호르무즈 리스크가 띄운 '북극항로'…K-조선, 쇄빙선 특수 정조준
수정 2026-05-30 09:14:28
입력 2026-05-30 09:14:27
김동하 기자 | rlacogk@mediapen.com
정부, 2030년 정기 항로 개설 추진… 호르무즈 해협 물류 대안 부상
특수 강재·결빙 제어 필수… 한화오션·HD현대 등 쇄빙선 수주전 기대
에너지 조달 루트 다변화 및 해양 플랜트 등 중공업 생태계 낙수효과
특수 강재·결빙 제어 필수… 한화오션·HD현대 등 쇄빙선 수주전 기대
에너지 조달 루트 다변화 및 해양 플랜트 등 중공업 생태계 낙수효과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하며 글로벌 에너지 물류 밸류체인이 위협받는 가운데, 정부가 이를 헷징(분산)하기 위한 대안으로 '북극항로' 상업화를 본격 추진하고 나섰다. 극지 운항에 필수적인 쇄빙선과 내빙(아이스클래스) 선박 수요가 새롭게 창출되면서, 고부가가치 특수선 건조 역량을 선점한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가 구조적인 수주 특수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폐쇄 위협 등으로 공급망 타격을 겪은 한국이 중국에 이어 아시아 강국으로는 두 번째로 북극항로 활성화를 공식 추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 |
||
| ▲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스웨덴 쇄빙전용선의 조감도./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
◆ 글로벌 물류망 재편… '대안 밸류체인' 북극항로 부상
해양수산부는 오는 2030년까지 상선들의 유럽행 정기 항로를 개설하고,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부산-로테르담 구간의 시범 운행을 추진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기존 수에즈 운하를 거치거나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남방 항로를 대체할 경우 운송 시간과 물류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어, 해운 및 정유·화학 업계의 원가 경쟁력을 방어할 수 있는 핵심 물류 밸류체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은 앞서 북극항로가 한국 수출입 생태계에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란 등이 주장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서방 동맹국들이 이란의 해협 통제에 반발하는 역학 구도 속에서, 우리 정부 역시 지정학적 볼모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적인 에너지 수송망 확보에 사활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쇄빙선을 적극적으로 확충해 북극항로의 항해 가능 기간을 1년에 최장 9개월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북극항로 운항에 성공해 운송 시간을 단축한 중국의 궤적을 쫓아, K-해운 역시 극지 전문가 양성과 국제 협력 확대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물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셈법이 작용하고 있다.
◆ 쇄빙·내빙 선박 수요 점화…K-조선 수주 '슈퍼사이클' 연장
북극항로의 상업화는 필연적으로 국내 조선업계의 막대한 수주 모멘텀으로 직결된다. 영하 수십 도의 극한 환경과 두꺼운 빙해를 뚫고 나아가야 하는 북극항로에는 일반 상선이 투입될 수 없다. 선체 외부가 얼음에 부딪혀도 파손되지 않는 특수 강재와 결빙 방지 시스템이 적용된 내빙 선박 혹은 자체 쇄빙 기능이 탑재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쇄빙 선박 시장은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기술적 진입 장벽을 쌓고 있는 분야다. 범용 상선 시장을 저가 물량으로 장악한 중국 조선사들이 아직 기술적 신뢰도를 확보하지 못해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하이엔드 시장인 만큼, 극지용 선박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K-조선이 확고한 프라이싱 파워(가격 결정력)를 쥐고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리한 시장 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쇄빙선 확충 계획 역시 국내 조선업계의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과 맞물려 강력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국가 주도의 국책 과제를 통한 쇄빙 기술 고도화 실적이 민간 조선사의 글로벌 상선 수주 이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밸류체인이 구축되면서, 전 세계 선주사들을 대상으로 한 K-조선의 영업 협상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에너지 조달 루트 다변화…중공업 생태계 동반 낙수효과
북극항로의 개척은 단순히 선박 건조 특수를 넘어,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의 원료 조달 역학 구도에도 숨통을 틔워줄 전망이다. 중동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현재의 원유 도입 밸류체인을 다변화함으로써, 이란 전쟁이나 해협 봉쇄 등 거시적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국내 핵심 산업계가 입는 타격을 선제적으로 헷징(분산)하는 구조적 안전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아울러 극지방에 매장된 막대한 에너지 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활기를 띠면, 이를 채굴하고 정제하기 위한 부유식 해양 플랜트(FLNG)와 극한지용 특수 모듈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게 된다. 이는 대형 구조물 제작 역량과 엔지니어링 능력을 갖춘 국내 중공업 및 건설기계 업계 전반에 새로운 일감과 고수익을 제공하며, 전통 제조업 생태계 전반의 부활을 견인하는 낙수효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북극항로가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통과하는 노선인 만큼 중·러 밀착 구도와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사이에서 교묘한 외교적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상업적 물류망 확보라는 실리를 챙기면서도 이해관계자 간의 지정학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뒷받침되어야 북극항로 밸류체인이 온전히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북극항로 활성화 추진은 중동발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하는 동시에 조선업계에 고수익 특수선 발주라는 새로운 구조적 시장을 열어주는 이중의 호재"라며 "극지 운항용 선박은 일반 상선 대비 건조 단가가 월등히 높아,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K-조선의 중장기 실적을 든든하게 견인하는 핵심 밸류체인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