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호주 핵잠수함 공급 축소에 글로벌 해양 방산 공급망 '균열'
중 팽창 속 안보 공백 직면한 연안국…K-조선, 핵심 대안으로 부상
한화·HD현대, 잠수함·수상함 '투트랙' 밸류체인…가격 결정력 확보 전망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핵잠수함을 공급하기로 한 오커스(AUKUS) 협정이 대폭 축소되면서 글로벌 해양 공급망에 균열이 발생한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가 태평양 동맹국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 팽창과 서방의 생산 인프라 한계가 맞물린 지정학적 역학 속에서 K-조선이 압도적인 건조 밸류체인과 가격 결정력을 무기로 글로벌 해양 안보 시장의 판도를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 사진은 HD현대 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 제공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영국의 호주 핵잠수함 공급 계획(오커스 필러 1)이 중고 버지니아급 잠수함 3척 이전 수준으로 대폭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호주 내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시민 모금으로 오커스 협정의 실효성을 따져보는 독립 검토 작업에 착수하는 등 태평양 동맹국들이 다른 방산 파트너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추세다. 이처럼 전통적인 안보 동맹 구도가 흔들리면서 고도화된 함정 건조 능력을 갖춘 국내 조선업계로 글로벌 시선이 모이고 있다.

◆ 시장 구조 개편…서방 공급망 한계와 K-조선 진입 기회

글로벌 해양 방산 시장의 구조적 재편은 서방 진영의 고질적인 '생산 인프라 한계'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영국의 주요 조선소들은 막대한 자본력에도 불구하고 숙련공 부족과 극심한 공급망 적체 현상으로 인해 자국 함정의 적기 건조조차 지연되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반면 중국은 강력한 국가 주도 하에 국영 조선소들을 전면에 내세워 대규모 물량 공세를 펴며 해양 영토 확장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런 비대칭적 시장 구조 속에서 호주와 캐나다, 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연안국들은 안보 공백을 조기에 메우기 위해 안정적인 납기와 건조 능력을 갖춘 제3의 공급자를 찾아야 하는 장기적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서방 진영 내부의 조달 실패가 한국 조선사들에게는 거대한 신흥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전략적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다.

이 빈틈을 노리는 대표적인 플레이어가 바로 국내 해양 방산의 양대 축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다. 이들은 철강 등 기초 소재 조달부터 설계, 건조, 무기 체계 탑재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된 투탈 해양 방산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 한화·HD현대의 '투트랙' 밸류체인…현지 이해관계자 셈법 공략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잠수함과 수상함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앞세워 태평양 연안국 이해관계자들의 셈법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선 잠수함 분야에 강점을 지닌 한화오션은 캐나다 차기 잠수함 수주전 등에서 전방위적인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한국 정부 역시 한화오션을 뒷받침하기 위해 현역 잠수함의 캐나다 전개와 해군참모총장 파견을 단행하는 등 협력 체제를 가동하며 국가적 차원의 수주 의지를 전달한 바 있다.

한화오션의 이러한 행보는 영연방 국가들이 요구하는 부품 현지화 조달 조건과 중장기 MRO(유지·보수·정비) 생태계 조성 등 현지 정·재계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단순한 함정 매각을 넘어 기술 이전과 현지 일자리 창출을 연계한 밸류체인 패키지 딜을 제안함으로써 수주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현지 공급망과의 결속을 강화하는 한화오션의 셈법이 글로벌 수주전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상함 시장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환태평양 벨트를 중심으로 수출 영토를 빠르게 확장해 나가는 흐름이다. 필리핀과 페루 등 주요 신흥국에 호위함과 원해경비함을 인도하며 K-수상함의 표준화된 밸류체인을 이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현대중공업은 상선 부문에서 다져진 대규모 구매력과 방산 물량을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 구조를 최적화했으며 이는 향후 추진될 호주나 캐나다의 대형 수상함 프로젝트에서도 고지를 선점할 원동력으로 거론된다.

◆ 일본의 추격…밸류체인 우위 통한 가격 결정력 확보 전망

해양 방산 수요가 급증하자 일본 역시 적극적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견제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영국, 이탈리아와 6세대 스텔스 전투기(GCAP)를 공동 개발하는 동맹 다변화를 추진하는 한편 최근 호주 해군을 겨냥해 모가미급 스텔스 호위함 12척 판매 카드를 꺼내 들며 무기 수출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국가들이 미국의 불확실한 안보 의지에 대응해 독자적 방산 협력을 확대하는 거대한 흐름에 편승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그러나 글로벌 방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산 무기가 오랜 기간 자국 방위성 위주로만 폐쇄적으로 공급되어 온 탓에 대당 건조 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된다. 해외 방위 산업 수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부품 후방 밸류체인의 개방성이 떨어져, 한국 등 경쟁국과의 글로벌 입찰 수주전에서 다소 불리한 역학 구조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양산 효율성과 단가 측면에서의 딜레마가 일본 방산업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후방 부품 기자재 업체들과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글로벌 입찰에서 확고한 가격 결정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서방 진영의 해양 방산 공급망이 병목 현상에 직면한 현 상황은 국내 조선업계에 구조적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한화오션의 잠수함 역량과 HD현대의 수상함 밸류체인이 시너지를 낸다면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수요를 흡수하며 해양 방산 영토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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