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방한 속 연쇄 회동…게임 넘어 로봇·방산으로 확장
성장 정체 게임업계, 피지컬 AI서 새 먹거리 찾는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방한 기간 국내 게임업계 수장들과 잇따라 만나면서 엔씨와 크래프톤의 피지컬 AI(인공지능) 전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임을 넘어 로봇·제조·방산 등 실물 산업으로 확장하려는 양사의 구상이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계기로 한층 구체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 7일 방한한 (사진 오른쪽)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서울 강남구 PC방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크래프톤


8일 업계에 따르면 젠슨 황 CEO는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김택진 엔씨 대표와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과 각각 회동하면서 화제가 됐다. 양사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AI·시뮬레이션 기술을 기반으로 로봇과 산업용 AI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어 이번 만남이 향후 사업 확대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 크래프톤, 방산·로봇으로 외연 확대

크래프톤은 보다 공격적으로 피지컬 AI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크래프톤은 딥러닝본부 내 전담 조직을 운영하며 로봇 제어와 행동 계획, 시뮬레이션 기술 개발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미국에는 로보틱스 연구개발 법인인 ‘루도 로보틱스’를 설립해 관련 기술 개발 거점으로 활용 중이다.

방산 분야와의 접점도 빠르게 넓히고 있다. 크래프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피지컬 AI 공동 개발 및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AI·로봇·방산 분야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또한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확보한 대규모 전장 시뮬레이션 기술과 AI NPC, CPC 기술을 무인 전투체계와 자율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게임 속 가상 전장을 실제 로봇과 무인체계 훈련 환경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피지컬 AI 전략은 게임 본업과도 연결된다. 크래프톤은 향후 출시 예정인 신작들에 생성형 AI와 강화학습 기술을 접목해 AI 동료와 함께 플레이하는 환경, 현실에 가까운 물리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AI 기술을 게임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진출에 동시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크래프톤과 엔비디아의 협력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로봇용 AI 플랫폼과 시뮬레이션 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고 있는 만큼 크래프톤이 보유한 게임 기반 시뮬레이션 기술과의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젠슨 황과의 회동에서 장병규 의장은 "앞으로도 크래프톤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게임뿐 아니라 AI 영역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겠다"고도 강조했다.

◆ 엔씨, 월드 모델로 산업 현장 공략

   
▲ 엔씨 판교 R&D센터./사진=엔씨

엔씨는 AI 전문 자회사 NC AI를 앞세워 피지컬 AI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회사는 자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과 멀티모달 기술을 기반으로 현실 세계를 가상 공간에 구현하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과 로봇 제어에 특화된 AI 모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월드 모델은 물리 법칙과 환경 변화를 학습해 현실을 디지털 공간에 재현하는 기술이다. 제조·물류·국방 분야에서 로봇 훈련과 시뮬레이션에 활용될 수 있어 피지컬 AI의 핵심 기반 기술로 꼽힌다. 엔씨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3D 그래픽, 물리 엔진, 대규모 서버 운영 기술을 산업용 디지털 트윈과 시뮬레이션 분야에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엔씨는 정부가 추진하는 피지컬 AI 연구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NC AI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주관하는 월드 모델 개발 과제에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산업용 시뮬레이션 기술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시장에서는 NC AI의 성장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NC AI는 분할 이후 흑자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키웠지만 현재 매출 상당 부분이 그룹 내부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 결국 외부 고객 확보와 사업 확장이 기업가치 평가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현실화될 경우 엔씨의 월드 모델 기술이 글로벌 로봇·시뮬레이션 생태계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피지컬 AI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실제 매출과 수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 게임사의 다음 승부처 된 피지컬 AI

   
▲ 배틀로얄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사진=크래프톤

업계에서는 엔씨와 크래프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미래를 겨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엔씨가 제조·물류·국방 분야의 산업 인프라용 월드 모델 구축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크래프톤은 방산·로봇·모빌리티 영역의 자율 시스템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공통점은 게임 시장 성장 둔화 속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피지컬 AI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에서 축적한 시뮬레이션 기술과 AI 역량을 현실 산업으로 확장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앞서 다양한 IT 기술들이 게임 산업 내에서 가장 먼저 활용되는 사례가 많았던 만큼 양사의 전략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추진될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젠슨 황 CEO 방한은 국내 게임사들이 단순 콘텐츠 기업을 넘어 글로벌 AI 생태계의 파트너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향후 실제 사업화 성과와 수익 창출 여부에 따라 게임업계의 기업가치 평가 기준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