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의 조건은…전력 확보 경쟁이 변수
에너지 시스템 구축·정교한 국가 전략 필요
[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지난주 한국을 찾은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Jensen Huang)의 발걸음은 단순한 기업인의 방한이 아니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로봇과 자율주행, 이른바 ‘피지컬 AI’를 둘러싼 차세대 산업 지형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에 가까웠다.

   
▲ AI 경쟁은 사실상 전력 확보 경쟁이 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 ESS, SMR 투자에 앞다퉈 뛰어드는 이유다. 자료/이미지 생성=gemini


특히 네이버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초대형 AI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구상이 공개되면서 AI 산업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AI 시대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에서 한국이 중요한 거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젠슨 황은 AI 반도체를 넘어 로보틱스와 피지컬 AI를 미래 성장축으로 제시했고,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가전, 로봇 등 세계적 제조 기반을 갖춘 한국이 AI와 제조업 융합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소식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AI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더 이상 반도체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AI 시대의 승부는 결국 얼마나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흔히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생성형 AI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서버 수천, 수만 대가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소형모듈원전(SMR) 투자에 앞다퉈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경쟁은 사실상 전력 확보 경쟁이 되고 있다.

실제로 기가와트(GW)급 AI 팩토리는 중소 도시 전체가 사용하는 전력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발전설비 확충과 송전망 구축, 계통 안정화 비용 역시 함께 증가한다. AI 산업의 성장은 더 이상 디지털 공간 안에서만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물리적 전력 인프라와 직결되는 현실의 산업이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망과 반도체 공급망을 갖췄지만 전력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많다. 국토는 좁고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송전망 확충은 지역 갈등에 가로막혀 있고,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 역시 산업계 수요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정부도 이 같은 점을 감안해 관련 기술개발과 전력구조 개편, 전력망 확보 등에 가능한 한 점진적인 진전을 모색하고 추진하는 중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AI에게 물어봤다. "대한민국이 AI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확대하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까지 달성할 수 있을까?"

AI의 답변은 의외로 신중했다.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와 송전망 확충, 에너지저장장치 보급, 전력시장 개혁 등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AI 산업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가 에너지 전환 목표 달성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물론 AI의 답변이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될 현실을 보여준다. AI 산업 육성과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 석학 바츨라프 스밀은 “에너지 전환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했다. AI 산업 육성을 선언한다고 해서 전력이 저절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태양광과 풍력, 원전, ESS, 송전망, 계통 안정화 대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재생에너지 공급 목표 역시 산업정책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탄소중립 문제다. 세계 주요 기업들은 RE100을 넘어 ‘24시간 무탄소 전력(CFE)’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막대한 전력을 화석연료에 의존한다면 AI 산업 성장 자체가 탄소중립 목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AI 경쟁력과 기후 대응은 더 이상 별개의 정책이 아니다.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석탄 등 자원 사용 효율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석탄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른바 ‘제번스 역설’이다. 오늘날 AI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반도체는 더 효율적으로 진화하고 서버는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연산을 수행하지만, AI 활용 자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체 전력 소비는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젠슨 황의 방한은 한국이 AI 산업의 핵심 파트너라는 사실을 보여준 반가운 신호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졌다. 우리는 AI 강국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AI를 돌릴 만큼 충분한 전력을, 그것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혁명의 승자는 반드시 최고의 반도체를 가진 나라가 아닐 수도 있다. 에너지 전환의 복잡성과 비가역성을 딛고 가장 안정적인 전력망과 가장 경쟁력 있는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가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펜=이소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