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대작과 ‘군체’ 틈바구니 속 극적인 흥행 반전 드라마 쓰는 중
38주 연속 2위 비운의 발라더 ‘최성곤’ 신드롬…음원 차트까지 역주행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지난 6월 3일 극장가에 등판한 손재곤 감독의 신작 영화 ‘와일드 씽’이 개봉 초반의 부진을 딛고 무서운 기세로 흥행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개봉 당시 ‘와일드 씽’은 톱스타 강동원의 오랜만의 코미디 컴백작이라는 거대한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극장가를 장악한 연상호 감독의 K-좀비 스릴러 대작 ‘군체’의 폭발적인 신드롬에 밀려 다소 아쉬운 출발을 알렸다. 막강한 제작비와 거대한 스케일을 앞세운 국내외 화제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초반 관객 동원 속도가 저조해 흥행 전선에 빨간불이 켜지는 듯했다.

그러나 개봉 2주 차를 넘어서며 반전이 시작됐다. 독주를 이어가던 ‘군체’의 관객 동원 화력이 점차 둔화하고 있는 반면, ‘와일드 씽’은 관객들의 자발적인 입소문과 높은 좌석 판매율을 바탕으로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2위 굳히기에 들어간 ‘와일드 씽’의 이러한 끈질긴 생명력을 두고, 충무로 안팎에서는 기적적인 ‘역주행’의 서막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오정세가 영화 '와일드 씽'의 역주행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사진=롯데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미있는 점은 이 극적인 역주행의 숨은 일등공신이 타이틀롤을 맡은 강동원이 아닌, 조연으로 극의 활력을 불어넣은 배우 오정세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와일드 씽’은 1990년대 후반 가요계를 풍미했던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강동원·엄태구·박지현 분)이 20년 만에 재기를 꿈꾸며 벌이는 짠내 나는 소동극이다. 오정세는 이들의 전성기 시절 라이벌이자, 음악방송에서 무려 ‘38주 연속 2위’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비운의 감성 발라더 ‘최성곤’ 역을 맡았다.

극 중 최성곤은 형사들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저작권료 통장을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지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손재곤 감독 특유의 정교한 ‘말맛’에 오정세만의 독보적인 생활 밀착형 코믹 연기가 버무려지면서, 최성곤은 등장하는 매 장면마다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하는 치트키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강동원의 완벽한 비주얼을 보러 극장에 들어갔다가 오정세의 인간미 넘치는 코미디에 출구를 찾지 못하고 나왔다”는 관람 평이 쏟아지는 이유다.

‘최성곤 신드롬’은 단순히 극장가 내부의 열기에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 전반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영화 속 최성곤의 메가 히트곡으로 등장하는 발라드 곡 ‘니가 좋아’가 실제 주요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기현상을 낳은 것이다.

   
▲ '와일드 씽' 역주행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 중 하나가 영화 속 최성곤의 노래 '니가 좋아'라는 분석도 있다. /사진=롯데 엔터테인먼트 제공


90년대 특유의 아련한 감성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그리고 극 중 서사와 맞물린 애틋한 가사가 뉴트로(New-tro) 열풍을 타고 SNS 숏폼 콘텐츠의 배경음악으로 급속도로 확산됐다. 실제 가수가 아닌 영화 속 가상의 캐릭터가 부른 노래가 대형 아이돌 그룹들의 신곡 사이에서 차트인에 성공한 것은 마케팅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관객들이 주도한 진짜 흥행의 증거다.

여기에 오정세 배우의 진심 어린 팬서비스가 화력을 더했다. 오정세는 최근 진행된 무대인사에서 최성곤의 극 중 시그니처 아이템인 핑크빛 천사 날개를 등에 달고 객석에 깜짝 등장, 손재곤 감독과 함께 ‘니가 좋아’를 라이브로 열창해 극장을 콘서트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에 화답하듯 최성곤의 극 중 팬덤명인 ‘곤듀’를 자처하는 관객들이 속출하며 N차 관람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대작과 한국 영화 대작들의 치열한 각축장 속에서, ‘와일드 씽’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자극적인 액션 없이 오직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압도적인 코믹 앙상블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강동원이 문을 열고 오정세가 완벽하게 받아친 이 완만하고도 단단한 역주행 곡선이 과연 올여름 극장가의 최종 승자로 안착할 수 있을지, ‘곤듀’들의 푸른빛 통장이 어디까지 기적을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