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엔솔 숨 고르기 속 이노텍·전자 ‘신형 엔진’ 급부상
과거 ‘인화’ 탈피… 자사주 소각·ABC 투자로 ‘실리’ 장착
[미디어펜=조우현 기자]LG그룹 계열사들이 세대교체를 겪고 있다. LG화학과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수요 둔화와 석유화학 침체 여파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반면, 새로운 전기를 맞은 부품·가전 계열사들이 그룹의 성장축을 지탱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계열사 간 ‘업앤다운(Up&Down)’ 리스크를 방어하는 이면에 지주사인 ㈜LG의 '사령탑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 부진한 사업이나 계열사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쉽게 쳐내지 못했던 '인화 경영'을 깨고, 철저한 실리주의로 돌아선 지주사의 포트폴리오 조율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LG트윈타워 전경./사진=LG전자 제공


◆ 화학·엔솔 주춤하자… ‘변모한 전자’와 ‘급부상한 이노텍’이 하드캐리

가장 극적인 변모를 보여준 곳은 LG이노텍이다. 과거 매출의 상당 부분을 애플 아이폰 카메라 모듈에 의존했던 LG이노텍은 올해 고성능 반도체 기판(FC-BGA) 부문이 결실을 맺으며 사상 최고가 행진을 벌이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 평가 자체를 새로 받으며 그룹 시총을 견인하는 모습이다.

LG전자 역시 단순한 가전 제조 기업에서 탈피했다. 글로벌 빅테크 데이터센터의 열을 식혀주는 냉각 시스템(칠러) 수주를 쓸어 담는가 하면, 전장(VS) 사업의 안착과 가전 구독 서비스라는 확실한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지난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한때 중국 화장품 수출 둔화로 '다운 사이클'을 겪었던 LG생활건강 역시 완연한 실적 반등 국면에 진입했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선주 대표의 지휘 아래, 북미 시장 개척과 핵심 브랜드 리브랜딩에 단행한 선투자가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그룹의 방어 전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 5000억 자사주 소각… '시장경제' 원칙 충실한 자본의 방패

이 같은 교차 성장의 이면에는 지주사의 과감한 재무 결단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는 지난 2022년부터 매입해 온 총 5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올해 상반기 내에 전량 소각하는 절차를 완료하며 시장과의 약속(밸류업)을 이행했다. 

지주사 특유의 할인율 탓에 당장 주가의 폭등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전체 발행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끌어올림으로써 계열사 한파 속에서 그룹 전체의 주가 지지선을 지켜내는 단단한 '방패' 역할을 해냈다.

특히 배당 성향을 60%로 올리며 중간배당까지 안착시킨 것은 가장 모범적인 자본 효율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의미 없이 돈을 낭비하는 대신,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의 몫을 진짜로 키워주는 실리주의를 장착한 셈이다.

지주사는 투자 실탄을 마련하는 방식에서도 과거와 결을 달리했다. ㈜LG는 상징적 자산이었던 서울 종로구 소재 LG광화문빌딩을 LX홀딩스에 5120억 원에 매각하며 대규모 현금 유동성을 확보했다. 오너 일가의 이해관계나 온정주의를 배제하고 오직 실리를 위해 자산을 유동화한 것이다.

이 자금은 구 회장이 직접 낙점한 미래 성장동력인 'ABC(AI·바이오·클린테크)' 영역의 원천 기술 확보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 

실제로 이달 중순 LG AI연구원이 전문 신약개발사인 디앤디파마텍과 '경구용 비만 치료제' 신약 공동 개발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하고, 앞서 2월에는 제조·로봇 공정을 제어하는 '피지컬인텔리전스랩'을 신설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범용 B2C AI 시장의 무모한 체급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그룹 특성에 맞춰 확실한 수익이 나오는 특화 영역(Vertical) 모델을 지주사 차원에서 정밀 타격한 결과다.

◆ "사업은 결국 사이클"… ㈜LG의 '선투자'가 증명한 독자적 생존 체력

제조업과 부품업은 본질적으로 글로벌 경기와 전방 산업의 '업앤다운(Up&Down)' 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한 계열사나 특정 산업의 일시적인 부진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본을 빼고 더하는 지주사의 안목이 대기업 집단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다.

실제로 수년간 수조 원대 적자를 내며 그룹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던 LG디스플레이가 중국발 저가 LCD 사업을 과감히 종료하고 고부가 OLED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해 3개 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반전이 이를 증명한다.

결국 화학과 배터리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디스플레이와 전자·부품이 전면에서 실적을 이끌고, 그 사이 확보한 지주사의 실탄이 다시 미래 원천 기술로 흘러 들어가는 선순환 구조는 지주사 ㈜LG의 정교한 설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오는 6월 말 취임 8주년을 맞이하는 구광모 회장과 지주사 ㈜LG의 향후 행보에 자본시장의 기대감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지주사 차원에서 묵묵하게 밀어붙인 선제적 투자가 그룹의 격변기마다 거대한 '방패와 창'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인화에서 벗어난 '실리주의'를 장착한 지주사 ㈜LG의 선투자가 다음 업턴(Upturn) 사이클에서 어떤 폭발력을 보여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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