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 협치①]무늬만 협력은 "이제 그만"... ‘투자·지원’ 병행돼야
수정 2026-06-23 15:55:15
입력 2026-06-23 15:10:35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글로벌 공급망 전쟁 시대, 부국강병 위한 '정경협력' 생존 전략 부각
현 정권, 대기업 총수 연쇄 독대·간담회로 '치적용 투자 보따리' 압박
현 정권, 대기업 총수 연쇄 독대·간담회로 '치적용 투자 보따리' 압박
정치(政治)와 경제(經濟)가 손을 잡고 국부를 창출하는 ‘정경협력(政經協力)’은 글로벌 공급망 경쟁 시대에 부국강병을 위한 반드시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정경유착’ 프레임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다. 역대 정권마다 이 같은 모순이 반복돼 온 가운데, 현 정권 역시 대기업 총수들과 화기애애한 회동을 연출하면서도 뒤로는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 기업의 목줄을 죄는 규제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미디어펜은 국내 정·경 관계의 실태를 살펴보고, 해외 선진국 사례를 짚어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정치와 경제의 올바른 관계를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정치와 경제가 긴밀하게 공조해 국부를 늘려가는 구조는 시대를 불문하고 통용돼 온 경제 성장의 기본 법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 관계는 ‘정경 유착’이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며 부정적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에 학계에서는 단어의 프레임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정적 의미의 유착이 아닌 투명한 ‘정경협력’과 협치야말로 글로벌 공급망 전쟁 시대에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옳은 길이라는 의미에서다. 정치가 기업을 통제나 동원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기업 성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든든한 조력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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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입장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기업이 필요한 곳에 정부가 나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정경협력”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한국경제를 위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 독대와 간담회 이면… 치적 쌓기용 우려
겉보기에 현 정권은 경제 활력 제고와 지역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기업 총수들과의 화기애애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4일 청와대 10대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지방 270조 원 투자’라는 대규모 확답을 받은 데 이어, 지난 1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독대, 오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독대 등 연쇄 회동이 예고돼 있다.
또 오는 29일로 예정된 반도체·AI 주요 기업 간담회에서는 또다시 대형 호남권 투자 계획과 청년 일자리 창출 방안이라는 재계의 보따리가 풀릴 전망이다. 다만 현 정권이 보여주는 정경 관계의 본질은 ‘유착이라는 족쇄‘와 ‘협력이라는 가면’이 공존하는 이중성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권의 지방 투자나 청년 고용 등에 있어 정부가 대기업과 ‘상생 협력의 무대’를 연출하고 있지만, 호남권 인프라 문제 해결이나 규제 등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미 수백 조 원의 투자가 예정돼 있는 반도체 산업은 투자 규모가 큰 만큼 새로운 투자를 결정할 때 기업의 리스크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유동성, 안정성, 수익성, 성장성 등 기업의 숫자 자료로 안전성을 진단하는 재무 리스크 외에도 규제나 법규, 정치 등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비재무 리스크 역시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원하는 투자는 이러한 투자 성패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치적용 요구에 가깝다. 인프라 문제는 물론 인력 문제, 노조가 득세하는 지역이라는 점 등 기업이 정권을 믿고 정부의 일방적 요구에 응하기가 쉽지 않은 수준이다.
◆ 외교에도 기업 대동, 재계·산업 지원책은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를 살펴보면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인하는 것과 달리 세제·규제 현실과 국회 발 입법은 반기업에 가깝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자국 정부의 세제 혜택을 업고 뛸 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법인세(최고세율 25%)와 상속세(최대주주 할증 포함 최고 60%) 부담이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성행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는데 있어 소홀한 편이다. 최근에서야 철강 등 일부 산업에서 중국산 등 일부 수입제품에 반덤핑 조치가 이뤄지고 있을 뿐 중국 등 강대국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한 현실이다.
특히 국내 주요 고객인 미국 등 북미 지역과 유럽연합(EU)은 최근 몇 년째 확실한 보호무역 기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고관세를 부과하며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선 상황이다. 자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게 큰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자국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이러한 문제를 외교로 풀기도 하지만, 대부분 외교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기업 총수를 대동하는 등 오히려 기업으로부터 정부가 취하는 이익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나 자동차 방산, 조선 등 외교를 통한 협치 사례가 대표적으로 언급되지만,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필요하다. 기업이 대규모 공채 등을 통해 정부의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듯이, 정부 역시 기업이 골머리 앓고 있는 것들을 치워 줄 수 있는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안(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은 재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총수들을 연이어 만나 지방 투자와 고용 확대를 언급하면서도, 뒤에서는 ‘소송 리스크’라는 걸림돌을 던진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결정은 기업이 내리고 책임은 이사가 지라는 것”이라며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손발을 묶는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다.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동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역시 재계가 가장 우려해 온 대표적 법안 중 하나다. 실질적인 법과 제도가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나 착취자로 보던 과거의 유착 프레임에 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정권과 기업 간 관계, 일방적 역사 끊어야
정치권이 필요할 때만 재계를 동원하고 돌아와서는 규제의 족쇄를 채우는 모순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표면적으로는 ‘규제 완화’와 ‘민간 주도 성장’을 천명했으나, 기업에 돌아온 것은 예외 없이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입법 폭탄이었다.
실제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했으나 결국 상법 개정안(다중대표소송제 등)의 불씨를 지폈고, 문재인 정부는 ‘공정경제’라는 명분 하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계열사 간 거래 규제를 강화한 ‘공정경제 3법’을 강행 처리하며 재계의 손발을 묶었다.
‘민간 중심 시장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 역시 대기업 총수들을 수시로 행사에 동원했을 뿐, 실질적인 기업을 위한 입법 과제들은 정쟁에 밀리기 일쑤였다.
현 정권의 행보 역시 현재까지로선 역대 정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대규모 지방 투자 계획을 연일 압박하면서도 중대재해법이나 하청 노조, 노조의 전면 파업, 제조업에서 노조의 일방적인 영업이익 배분 등 기업이 어려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구시대적 관치 공식을 그대로 재연하거나 아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패권 경쟁 시대의 정경협력은 정치권이 기업에 투자를 명령하고 생색을 내는 ‘상하 관계’나 정치적 ‘쇼(Show)’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 재계의 목소리다. 정치의 기업 ‘이용’을 중단해야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정경협력을 위해선 정부가 주인공이 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선진국들은 기업에 투자를 강요하는 대신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가동하고 인프라 조성을 도맡으며 철저히 지원에만 집중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역시 기업의 의사결정을 철저히 존중하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행정 처리를 재빠르게 도와주는 ‘적극적 불간섭과 신속한 행정 서포트’가 시스템으로 안착돼 한다”며, “말 뿐인 상생이라는 프레임을 깨고 실질적인 제도적 안착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