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공세·폴란드 인프라 위협 등 유럽 에너지 안보 '비상'
삼성SDI 'SBB'·LG엔솔·SK온 등 글로벌 전력망 ESS 침투 가속
두산 '루마니아 SMR' 등 성과…발전·저장 결합 시너지 관측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양상이 국가 기반 시설 타격전으로 번지면서 유럽 전역의 에너지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전에서 에너지망이 최우선 타깃으로 변모함에 따라 유럽 국가들이 피격 리스크가 적은 독립형 분산 전원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국내 배터리 업계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동유럽을 중심으로 기존 중앙집중형 전력망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 구축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독립형 분산 전원의 심장 역할을 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앞세운 국내 배터리 업계와 소형모듈원전(SMR)을 짓는 중공업계가 유럽 재건 시장에서 융합된 수주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사진=제미나이


◆ 타깃이 된 국가 인프라…유럽 덮친 에너지망 안보 위기

우크라이나는 최근 크림반도의 에너지망과 보급로 차단에 초점을 맞춘 전방위적인 드론 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망 파괴를 통해 적군의 군사적 작전 능력은 물론 지역 사회의 마비까지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전 인프라가 핵심적인 군사적 타깃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에너지 안보 위기감은 인접국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모양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가 폴란드의 인프라 시설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경계하며 향후 몇 달이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트비아 정보당국 역시 러시아가 폴란드나 라트비아를 향해 무력 도발을 꾀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양상의 변화는 단일 대형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탑에 의존하는 기존 전력 시스템의 치명적인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 한 곳의 핵심 인프라가 파괴되더라도 광범위한 지역이 대정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외부 위협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지역 단위로 전력을 자급자족하는 마이크로그리드(분산 전원) 시스템 구축을 시급한 안보 과제로 삼는 분위기다.

◆ 분산 전원 심장…해외 영토 넓히는 K-배터리

독립적인 분산 전원 생태계를 완성하기 위한 핵심 설비로는 단연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꼽힌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잉여 전력을 대규모로 비축하고 외부 송전선이 끊기더라도 즉각적으로 전력을 방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의 수요 정체로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 시급한 국내 배터리 업계는 이 같은 셈법 변화를 파고들며 이미 글로벌 전력망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SDI는 전력망용 대용량 ESS인 'SBB(삼성배터리박스)' 등을 앞세워 주요 선진 시장의 유틸리티 인프라 프로젝트 공략에 나섰다. 화재 위험을 낮추고 에너지 밀도를 높인 고도의 폼팩터 기술력으로 신뢰성이 최우선인 국가 전력망 사업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추려는 구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시스템 통합(SI) 법인을 통해 단순한 배터리 납품을 넘어 발전소 설계부터 유지보수까지 전력망 밸류체인 전반을 턴키(일괄 수주)로 제공하며 글로벌 안보 수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양상이다.

SK온의 행보도 본격화됐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극복하기 위해 ESS 사업을 미래 핵심 동력으로 격상한 SK온은 차량용 배터리에서 축적한 고안전성 기술력을 전력망용 대형 ESS에 이식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거대한 전력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ESS 전용 라인 구축 및 양산 체계 확보에 나서며, 인프라 재건을 앞둔 동유럽 등 글로벌 안보 시장 공략에 가세할 것으로 관측된다.

◆ '원전+저장' 패키지 셈법…중공업·배터리 시너지 관측

국내 중공업계도 글로벌 SMR 선도 기업인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핵심 주기기를 납품하는 원전 파운드리 전략으로 동유럽 안보 수요를 정조준하고 있다. 실제 뉴스케일파워가 루마니아 현지 전력사와 추진 중인 유럽 최초 SMR 건설 프로젝트에 두산에너빌리티의 핵심 기자재가 투입될 예정이다.

현재는 중공업계와 배터리 업계가 각각 독립적인 수주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계다. 그러나 시장 일각에서는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터리업계 ESS 역량과 중공업계의 SMR이 결합할 때 발휘될 시너지에 주목한다. 인프라 재건을 추진하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 정부와 현지 발전사들은 전력망 복구의 실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향후 초기 설계 단계부터 '발전(SMR)과 저장(ESS)'이 결합된 통합 모델을 요구할 유인이 크기 때문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24시간 일정한 전력을 생산하는 SMR이 발전 역할을 전담하고 ESS가 잉여 전력을 저장해 수급 균형을 맞추는 최적의 조합이 가능해진다. 당장 가시화된 공동 수주 사례는 없지만 글로벌 최고 수준의 ESS 기술을 보유한 배터리 업계와 SMR 주기기 역량을 축적한 중공업계가 전략적 협력 체계를 구축해 일명 'K-에너지 패키지' 형태로 동반 진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배경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전력망이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 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외부 물리적 위협에 강한 분산 전원 수요는 구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해외 현지에서 개별적인 성과를 입증한 배터리 업계와 중공업계가 전문성을 결합한다면 거대한 유럽 인프라 재건 시장에서 융합된 수주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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