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4나노 베이스 다이 내재화 완료…설계·제조·패키징 '일괄 공급' 주력
SK하이닉스, 미 ADR 상장·최태원 글로벌 행보 앞세워 'TSMC 동맹' 고도화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추세다. 특히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6세대)’부터는 메모리에 파운드리 로직 공정이 결합하면서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움직이는 가운데, 시장의 중심에 선 한국 반도체 기업들 역시 각기 다른 생존 전략을 구사하며 지형도 재편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변화 속에서 국내 양사가 취한 전략적 선택을 분석하고, 향후 산업 전망을 진단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시대의 개막과 함께 국내 반도체 양사의 전략도 분화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파운드리 공정을 무기로 반격을 개시한 반면, SK하이닉스는 대만 TSMC와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고부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HBM4E 12단 샘플 출하 경쟁에 돌입했다. 양사 모두 최선단 기술력이 집약된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하며 기술 검증 단계에 진입한 가운데, 이를 구현하는 전략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사진=삼성전자 제공


◆ 삼성전자, '원스톱 솔루션' 앞세워 공급망 안정·수율 확보 주력

삼성전자는 설계(로직)부터 메모리,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까지 한 지붕 아래서 처리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종합반도체기업(IDM) 역량을 전면에 내세웠다. HBM4 세대부터 필수적인 파운드리 미세 공정 전환에 대응해, 자체 파운드리 공정과 HBM 설계 간의 협업(DTCO) 체제를 구축하고 품질과 수율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수직계열화 구조는 외부 파운드리에 지불해야 할 마진을 절감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발주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선단 패키징 역량까지 자체 보유하고 있어 공급 안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글로벌 주요 GPU 및 차세대 주문형반도체(ASIC) 기반 하이퍼스케일러 고객사들과의 기술 협력을 지속 확대할 방침이다. 실제로 외형 성장을 이뤄낸 삼성전자는 HBM 매출을 끌어올리며 실적 반전을 증명해내고 있다.

이 같은 가파른 수요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삼성전자는 업계 최대 수준의 D램 생산능력과 선제적 인프라 투자를 기반으로 HBM4 양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2028년부터 본격 가동될 평택사업장 2단지 5라인을 HBM 생산의 핵심 거점으로 활용해 장기적인 공급 안정성을 다져나갈 방침이다.

차세대 라인업 가동 일정과 로드맵도 구체화됐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차세대 'HBM4E 12단'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출하하며 공급에 들어갔다. 이번 제품은 32Gb(기가비트) D램을 적용해 48GB(기가바이트) 용량을 구현했으며, 동작 속도를 최대 16Gbps까지 끌어올려 전작 대비 성능을 20% 이상 향상했다. 

HBM4 양산 과정에서 확보한 1c 공정 및 4나노 베이스 다이 기술 안정성을 HBM4E에도 그대로 적용해 양산성까지 조기에 확보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고객사의 연산 구조에 최적화된 맞춤형 HBM 역시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샘플링을 시작해 고부가 제품 전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굳힌다는 구상이다.

◆ SK하이닉스, 자본·경영 전반 아우르는 '글로벌 동맹'으로 수성

SK하이닉스는 글로벌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과 손을 잡고 '글로벌 연합' 전선을 고도화하고 있다. 자사의 D램 기술력과 TSMC의 미세 공정 및 첨단 패키징을 유기적으로 묶어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동맹 전략은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 글로벌 생태계 확장 행보로 확산되는 추세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주식시장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하며 글로벌 빅테크 투자자들과의 접점을 넓혔다.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행보 역시 이러한 연대 전략을 뒷받침한다. 최 회장은 단순한 반도체 칩 공급을 넘어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수적인 에너지 체계 등 복합적인 인프라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리더들과의 협력을 핵심 경영 과제로 중요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에너지, 데이터센터 역량을 결합해 전 세계 파트너들과 함께 AI 병목현상을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기술적 저항선이 낮아 시장에서 즉각적인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차세대 라인업 가동 경쟁에서도 빈틈없는 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18일, 독자적인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을 적용한 차세대 'HBM4E 12단'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전격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번 신제품은 경쟁사 제품 대비 전력 효율을 20% 이상 개선하고 열 저항을 17% 낮췄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향후 엔비디아의 차세대 루빈(Rubin) 플랫폼 등에 탑재될 맞춤형(Custom) HBM4 시장에서도 TSMC의 첨단 패키징(CoWoS) 기술과의 완벽한 호환성을 바탕으로 초기 점유율 수성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 '워피지 난제' 제어와 초기 양산 안정화가 최종 분수령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서로 다른 생존 방정식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공통으로 '수율 안정화'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HBM4는 고용량 구현을 위해 적층 수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베이스 다이와 코어 다이가 불규칙하게 휘어지는 ‘웨이퍼 워피지(Warpage)’ 현상이 심화돼 공통적인 수율 저하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TSV 데이터 송수신 저전압 설계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40% 개선하며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했으나, 업계 전반의 낮은 초기 수율로 인해 빅테크들의 차세대 가속기 HBM 채용 사양이 가변적으로 조정되는 등 시장의 불확실성은 상존한다.

결국 외부 마진을 줄이고 전 부문의 시너지를 노리는 삼성의 ‘일괄 공급·수직계열화’ 모델과, 글로벌 자본 및 제조 1위 기업들과 손잡은 하이닉스의 ‘원팀·초연합’ 모델 중 어느 쪽이 먼저 공정 난제를 풀고 양산 안정화에 도달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주도권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