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3년 6개월 만에 통화 긴축을 재개했다. 지난해 7월부터 이어온 연 2.5%의 금리 동결 기조를 마무리하고 물가안정에 다시 정책의 무게를 실은 것이다. 반도체 중심의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강한 데다 가계부채 증가세까지 확대되면서 금리 인상 여건이 충분히 갖춰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한은은 16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현행 연 2.5%인 기준금리를 2.75%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고 밝혔다. 2023년 1월(3.25%→3.5%) 이후 3년 6개월 만에 이뤄진 인상으로 통화정책 사이클의 첫 긴축 전환이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물가와 경기, 금융안정 여건이 동시에 금리 인상을 뒷받침한 점이 자리하고 있다. 고물가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는 가운데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졌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다시 확대되면서 기준금리를 더 이상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 상황은 이번 긴축전환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한은은 지난 2일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2%로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물가 부담이 여전히 크다고 진단했다. 석유류와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세가 이어진 가운데 근원물가도 2.5%의 높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한은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7월 물가 상승률은 다소 둔화하겠지만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압력과 비용 상승 영향으로 당분간 높은 물가 수준과 근원물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 여건도 긴축을 감내할 수준으로 개선됐다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 1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 전략에서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제시했다. 이는 한은이 지난 5월 내놓은 전망치(2.6%)보다 0.4%p 높은 수준이다. 국제금융센터 집계에서도 지난달 말 기준 주요 해외 투자은행(IB)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3.0%로 나타났다.

가계부채 증가세 역시 금리 인상을 뒷받침한 요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9조3000억원 증가해 전월보다 증가폭이 5조8000억원 확대됐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다소 둔화됐지만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이 5조3000억원 늘었다. 금융당국은 최근 주택 거래 증가의 시차 효과와 주식시장 투자 수요가 맞물리면서 당분간 가계부채 증가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현송 총재도 최근 공개석상에서 이 같은 여건을 근거로 금리 인상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다. 그는 지난 9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출석해 "지난해 7월 이후 기준금리를 연 2.5% 수준에서 유지해 왔지만, 물가와 경기, 금융안정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는 물가와 환율, 부동산 측면에서 "갈 길이 명확하다"고 밝혔고, 국제콘퍼런스에서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통화정책 조정 여건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한은 창립기념사에서도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긴축 기조를 재확인했다.

또한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출 호조와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개선되면서 성장세가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크게 높아졌으며 반도체 경기 호조가 이어지고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될 경우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경기 회복과 물가 등을 고려할 때 8월이나 10월 한 차례 더 추가 긴축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김진욱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달 인상을 시작으로 올해 10월과 내년 1월, 4월까지 분기마다 기준금리를 0.25%p씩 인상해 최종금리가 연 3.5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경기 호조와 원화 약세, 물가 상방 압력이 지속될 경우 금리 인상 속도가 더 빨라질 기능성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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