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만 가득한 반도체 업계, "기업 목소리는 어디에?"
수정 2026-07-16 11:04:28
입력 2026-07-16 11:04:36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노란봉투법 명분 준 정부, 노조에 ‘합법적 태클’ 판 깔아줬다
초과이윤 놓고 산자·노동 장관 장외 설전까지…기업 의견 실종
초과이윤 놓고 산자·노동 장관 장외 설전까지…기업 의견 실종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최근 혼탁한 글로벌 정세에서 반도체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하고 자율적인 경영 판단이지만, 국내에서는 정부와 국회, 노동계 등 안팎에서 쏟아지는 훈수로 인해 정작 경영 주체인 기업의 방향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와 삼성전자가 발표한 400조 원 규모의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노조가 반대하며 교섭 대상으로 삼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반도체 초과이익을 둘러싼 이견을 표출하며 반도체 업계가 바람 잘 날 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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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 투자 방침까지 교섭하자는 노조, 경영권 간섭
삼성전자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이 최근 발표한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반대” 움직임은 기업의 경영 판단이 친노조 입법에 기반해 어떻게 흔들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됐다.
노조는 조합원 84%가 호남 이전에 반대한다는 설문 결과를 근거로, 이를 2027년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의 핵심 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예고했다.
최근 시행된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의 ‘조합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 조항을 명분 삼아, 기업 고유의 영역인 공장 이전 계획까지 교섭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공장 부지 선정이나 중장기 투자 포트폴리오 구상 같은 경영진 고유의 판단 영역까지 일일이 노조와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원한 것도 정부, 권한 준 것도 정부… 노조에 ‘반대 명분’ 깔아줬다
그러나 노조의 제동 이전에,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보다는 투자를 제안한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 균형발전을 내세운 정부와 지자체의 요구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 가동에 필수적인 송전망 인프라는 물론, 주거·교육·의료 등 정주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엔지니어들이 지방 근무를 꺼린다는 한계가 제기 됐음에도 정부의 입김에 떠밀려 급조됐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더욱이 정부와 국회는 법 개정(노란봉투법)을 통해 노조가 이러한 사업 계획에 합법적으로 태클을 걸 수 있는 권한과 명분을 동시에 쥐어줬다. 정부가 투자를 요구해 놓고, 제도적으로는 노조가 이를 가로막을 판을 깔아준 자가당착의 형국이다.
정부의 모순된 정책 설계가 노조에 완벽한 명분을 제공하며 사측을 진퇴양난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적자 땐 모른 척, 벌 때는 숟가락… ‘초과이익’ 훈수 두는 장관들
정부 부처 장관들이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어떻게 쓸지를 두고 장외 설전을 벌이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점도 기업 환경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서울 여의도 토론회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영국의 ‘자원의 저주’ 사례를 언급하며 “오늘의 이익은 내일의 공장과 R&D에 투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AI 성과는 사회가 함께 만든 것”이라며 초과이익의 공정한 분배와 새로운 사회계약을 주장한 것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애초에 정부가 기업의 이윤에 대해 ‘초과이익’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간섭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적자가 날 때는 기업의 분투를 방관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이윤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것은 그저 ‘간섭’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장에선 생존을 위해 촌각을 다투는데, 정부가 기업의 이윤을 통제하려 드는 기이한 훈수 문화부터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는 투자를 압박하고, 노동부는 분배를 요구하며, 노조는 법을 방패 삼아 경영 방침에 간섭하고 있다”며 “기업이 시장 논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경영 판단에 훈수 두는 주체들만 늘어나면 기업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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