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영업익에도 한 달 새 15% 급락…수요 불안·매크로 악재 선반영
‘말뿐인 친기업’ 속 호남 팹·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 등 규제 리스크가 발목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89조4000억 원의 잠정 영업이익을 공시하며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 역시 60조 원 안팎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면서 양사의 합산 분기 영업이익은 150조 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호황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시장 내 우려와 규제 및 정책 불확실성으로 주가는 하향세를 보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지표의 괴리는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시장의 현실을 넘어, ‘대내외 규제’가 가장 큰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 이로 인해 시장 반응은 실적과 대비된 모습을 보인다. 사상 최대 실적 발표를 전후해 양사의 주가는 한 달 사이 15% 이상 하락했다. 고점 대비로는 약 30~40% 이상 떨어졌다.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사진=삼성전자 제공


◆ HBM 독주 속 범용 D램 ‘가격 위축’ 불안감

차세대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쥔 HBM(고대역폭메모리)의 미래는 유망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6세대 HBM4’가 본격화되는 시점부터는 진입장벽이 더 높아지고 생산 주기가 길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고객사들의 장기 공급 계약이 늘어나며 공급자 우위 현상이 공고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D램의 경우, 최근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는 완제품 수요 증가에 따른 호황이라기보다 HBM 생산 확대에 따른 공급 감소 여파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국내 기업들이 한정된 웨이퍼 생산능력을 HBM 라인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범용 D램(DDR4 등)의 공급 여력이 자연스럽게 축소됐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는 소송으로도 이어졌다. 최근 미국 소비자와 중소 PC 업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에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을 상대로 ‘범용 D램 공급 제한 의혹’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완제품 수요 회복이 더딘 상태에서 발생한 공급망 변화와 소송 리스크는 세트 업체들의 비용 부담 우려와 맞물려 단기 고점(피크아웃)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트렌드포스는 지난 2분기 50% 안팎이었던 D램 평균판매가격(ASP) 인상률이 당장 3분기부터는 13~18% 수준으로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 “IT 버블과 다르다”…실적 선반영 속 반론 팽팽

이러한 범용 D램 시장의 불균형 우려와 달리, 반도체 기업들이 현재 벌어들이고 있는 ‘실제 이익의 체력’ 자체는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는 반론 역시 우세하다. 범용 제품의 단기적 변동성과 별개로, AI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다져진 기업들의 절대적인 이익 규모가 시장의 과도한 비관론을 상쇄한다는 진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최근 상의 포럼에서 “공급을 늘리려 하지만 수요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내년에는 AI발 반도체 부족 현상이 한층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시장의 ‘선반영’ 특성과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반기 동안 주가는 이번 호실적을 선제적으로 반영하며 올랐고, 공식 실적이 발표되자 글로벌 자본이 차익 실현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이와 함께 미국 월가의 빅테크 AI 투자 수익성 의문론과 일본의 금리 인상 기조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겹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 비중이 큰 반도체 주식부터 매도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범용 D램의 공급망 이슈나 기업의 이익 지속 가능성 여부와는 별개로, 대외 금융 환경의 변동성이 주가 상단을 일시적으로 누르고 있는 셈이다.

◆ 정치 논리와 규제 입법이 최대 불확실성

재계에서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유의 경영권 영역인 성과급 산정 기준이나 공장 투자 배치마저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조의 교섭과 파업 대상으로 활용되는 모습이 최근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정치적 논리로 진행된 ‘호남 팹’ 프로젝트와, 언제든 경영권을 뒤흔들 준비가 돼 있는 국내 노동계의 움직임 자체를 불안 요인으로 바라보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업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리스크로 인식돼 주가를 끌어내리는 또 다른 패널티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과도한 세제 환경 역시 기업의 미래 투자 체력을 갉아먹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OECD 최고 수준에 달하는 법인세 부담과 최대 60%에 육박하는 징벌적 상속세율은 기업의 영속성을 위협하고 장기적인 대규모 설비 투자 결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법 리스크를 고조시키는 입법 환경도 부담이다. 현 정부 들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한 상법 개정안과 노동계에 비대한 힘을 실어준 노란봉투법이 잇따라 통과되면서 경영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감한 투자 결단 때마다 소송과 파업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적 모순이 되풀이되는 실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규제 입법과 고용·노동 리스크가 미래 성장성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한, 기업이 확보한 재원을 R&D 대신 소송 방어와 갈등 봉합 비용으로 소모할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 호황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 여건을 가로막는 규제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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