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애리조나 393조 몰아주기…반도체법 타고 빅테크 클러스터 완성
한국은 ‘지역 균등 발전’ 갇혀…전력·용수·인력 난제 속 효율성 저해 우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 투자 규모를 총 2650억 달러(약 393조 원)로 확대하며 파운드리 독주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법(CHIPS Act)’이 글로벌 첨단 생태계를 미국 본토로 결집시키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반면 한국은 글로벌 메모리·파운드리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투톱’을 보유하고도, 국가 핵심 산업을 ‘지역 안배’라는 정치적 명분에 맞추려 하면서 본질부터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한국은 세계 메모리·파운드리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투톱’을 보유하고도, 국가 핵심 산업을 ‘지역 안배’라는 정치적 명분에 맞추려 하면서 본질부터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제공


◆ ‘국가 안보전’ 미국 반도체법 vs ‘표심 안배’ 호남팹

미국 반도체법의 핵심은 ‘기술 패권과 국가 안보’다. 대규모 직접 현금 보조금과 세제 혜택이라는 유인책을 활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TSMC,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패키징·연구개발(R&D) 시설을 본토에 집중시키겠다는 국가적 사활을 건 전략이다.

이에 TSMC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과 주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애리조나주 한곳에만 반도체 공장(팹)과 첨단 패키징 시설 12곳, R&D 센터를 모아 건설 중이다. 현지 빅테크 고객사들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파운드리 초격차를 벌리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국내 정치권의 호남권(광주·전남)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 논의는 산업 경쟁력 확보보다 ‘지역 안배와 표심’이라는 정치적 명분이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규모 현금 지원과 시장 유인으로 자국 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미국과 달리, 지역 균형이라는 명목 아래 기업의 자발적 투자를 인위적으로 ‘분산’시키려는 정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삼성·SK, 대미 전략적 투자로 빅테크 시장 선점 박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AI 반도체 최대 수요처인 미국 시장을 잡기 위해 대미 투자를 전략적 기회로 삼고 적극적인 확장 행보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 달러(약 50조 원) 이상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 3000억 원)를 투입해 현지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국내 투자 입지를 둘러싸고는 기업의 본래 방침과 정치권의 요구 사이에는 온도 차가 존재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호남 투자가 최종 결정되기 전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차기 반도체 공장 입지와 관련해 “전력, 땅, 사람, 물 등 모든 것이 갖춰져야 한다”며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짓겠다는 것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며, 일단 지금은 용인 클러스터를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철저히 인프라 조건과 시장성, 수율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국가 성장 전략’과 ‘지역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결국 기업들은 정책적 안배 요구에 응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기업 고유의 경제적 타당성보다는 대외적 정책 명분에 끌려간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고품질 전력·초순수·고급 인력’… 3대 인프라 한계 극복이 과제

이처럼 글로벌 거점 확보와 기술 초격차 유지를 위해 한정된 설비투자 예산을 가장 효율적인 곳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력·용수·인력이 미비한 지방 투자는 자칫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우선 전력 수급의 질적 한계가 걸림돌이다. 호남 지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지만, 미세 공정이 핵심인 첨단 팹은 24시간 단 0.1초의 전압 변동도 허용하지 않는 고품질 전력이 필수적이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망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원전 및 초고압 송전망(HVDC) 확충하더라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용수 및 생태계 격리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루 수십만 톤 단위의 초순수(Ultra Pure Water) 용수 관로 구축 지연은 라인 가동 차질로 직결된다. 여기에 수도권 이남으로 내려갈수록 심화하는 고급 엔지니어 구인난과 경기 남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들과의 물리적 격리는 수율 확보와 속도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 기업은 사활 걸고 뛰는데 정책은 ‘지역 안배’

업계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승패가 ‘집적’과 ‘속도’에서 갈리는 만큼, 표심을 의식한 지방 분산 논리를 지양하고 기업이 최고 효율을 낼 수 있는 거점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역시 호남 및 충청권 투자 검토와 관련해 정치권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준감위 정례회의에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호남 투자 건은) 준감위에서도 논의 사항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권 논리에 좌우되지 않도록 준감위가 유의 깊게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결국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성패는 표심을 의식한 ‘지방 분산’이 아닌, 기업의 생산성과 수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율적 판단’과 ‘집적 효율’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TSMC가 미국의 반도체법을 발판 삼아 무섭게 달려 나가는 지금, 한국 역시 국가 핵심 산업을 정쟁이나 표심의 수단으로 삼는 정책적 오류에서 벗어나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