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홍해 셧다운 충격…에쓰오일, 물류 대란에 경유 수출 '발목'
아람코 덫에 갇힌 단일 공급망…위기 앞 유연성 잃은 '장기계약의 역설'
업계, 원유 도입선 다변화로 원가 방어…조달 밸류체인 생존 지표 부상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공격으로 홍해 해상 봉쇄가 현실화하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원유 수입 구조에 비상이 걸렸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특히 사우디 의존도가 절대적인 에쓰오일이 공급망 차질로 경유 판매 입찰을 취소하며 중동발 리스크의 직격탄을 맞았다.

25일 외신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이달 예정됐던 8월 인도분 경유 30만 배럴의 판매 입찰을 전격 취소한 것으로 확인된다. 후티 반군의 위협으로 사우디산 원유 공급과 선박 이동에 제약이 발생하자 조달 불안을 우려해 내린 결단이다. 회사 측은 통상적인 사업상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홍해 사태로 인한 물류 지연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 2026년 7월 23일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해 홍해를 빠져나온 중국 국적의 초대형 유조선 코스코호./사진=연합뉴스

◆ 홍해 봉쇄 현실화…애쓰오일, 얀부항 우회 발목

최근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유조선 2척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하며 홍해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동맥이 위협받으면서 브렌트유 가격은 단숨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요동쳤다. 이 같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중동발 원유 공급망에 깊숙이 얽혀 있는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사 중 가장 먼저 직접적인 물류 타격을 입게 됐다.

이러한 물류 대란은 에쓰오일이 지닌 고유의 지배구조와 공급망 밸류체인 특성에서 기인한다.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대주주로 둔 에쓰오일은 전체 원유 도입량의 대부분을 아람코 장기 계약을 통해 공급받아왔다. 이는 평상시 안정적이고 원가 경쟁력이 높은 조달망 역할을 했지만, 중동 무역로가 차단되는 위기 상황에서는 도리어 유연한 대체재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덫이 됐다.

실제로 에쓰오일이 원유를 선적하는 사우디 얀부항 출발 화물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아프리카 희망봉 방향으로 길게 우회해야 한다. 이로 인해 아시아로 향하는 항해 일수가 대폭 늘어나면서 해상 선박 운임 폭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평시의 가장 큰 무기였던 아람코와의 확고한 결속력이 위기 상황에서는 원료 조달의 발목을 잡는 '장기 계약의 역설'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 도입선 다변화한 경쟁사…엇갈리는 정유업계 생존 전략

반면 국내 경쟁사들의 공급망 밸류체인 상황은 사뭇 다른 궤적을 그리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등은 과거 여러 차례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를 경험하며 중동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들은 미국산(WTI) 원유 수입 비중을 과감하게 늘리는 것은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 등으로 원유 도입선을 선제적으로 다변화해 분산 배치했다.

미주 대륙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들여오는 원유 물량은 이번 홍해 인근 항로 셧다운 사태로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비껴갈 수 있었다. 이러한 도입선 다변화 전략은 극심한 해상 물류 대란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원가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했으며, 중동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고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할 수 있는 전략적 여력을 제공했다.

공급망의 유연성이 정유사의 생존을 가르는 핵심 지표가 되면서 업계 내 희비는 극명하게 교차하고 있다. 아람코라는 든든한 배후가 평소에는 강력한 원가 경쟁력을 보장했지만 글로벌 무역로가 물리적으로 차단되는 위기 앞에서는 유연한 전환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이번 에쓰오일 사태가 증명했다. K-정유업계는 단기 스팟 계약 비중을 조절하고 해상 운송 루트를 다각화하는 등 하반기 수익성 방어를 위한 밸류체인 사수 총력전에 돌입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행정부가 중동 해역에 병력을 증강 배치하는 등 사태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해운 운임 폭등과 석유제품 수급 불균형 리스크가 커졌다"며 "특정 지역과 특정 공급처에 극도로 편중된 원유 도입선을 가진 기업일수록 물류 단절에 따른 영업 손실 피해가 불어날 수밖에 없어 공급망 재편과 조달선 다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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