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줄었지만 노동생산성은 7년째 OECD 30위권 '정체'
반도체 R&D 속도전 발목 잡는 규제…"한국형 이그젬션 시급"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주 52시간 제도가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메가특구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 적용' 등 노동 규제 완화 조항을 포함할지를 두고 주무 부처 장관들의 시각차가 드러난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논쟁을 투입 시간 대비 창출 가치를 의미하는 '노동 생산성' 제고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재계에 따르면 메가특구는 국가 핵심 반도체, AI 등 첨단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산업단지나 소규모 특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광역 단위로 지정하고, 파격적인 규제 철폐와 인프라 지원을 집중하는 특별 구역이다. 

   
▲ 주52시간 제도가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메가특구특별법에 '주52시간 예외 적용' 등 노동 규제 완화 조항을 포함할지를 두고 주무 부처 장관들의 시각차가 드러난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논쟁을 투입 시간 대비 창출 가치를 의미하는 '노동 생산성' 제고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메가특구특별법은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을 위해 반도체·R&D 인력의 근로시간 예외가 필수라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현행 제도로도 기업 이익 창출에 무리가 없다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 52시간 안착했지만…시간당 생산성은 OECD 31위

지난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국내 산업 현장의 장시간 근로 관행은 지표상 뚜렷한 개선세를 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 비중은 2022년 기준 12.0%로 집계돼 OECD 평균(10.2%) 수준에 근접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생산성본부가 분석한 OECD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865시간으로 OECD 6위다. 하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달러로 31위에 머물러 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2018년 이후 7년째 30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탄력근무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52시간제 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0%가 '근무시간 관리 부담'과 '납기 및 R&D 업무 차질(31.0%)'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이들 기업은 탄력적 근로시간제(48.9%)와 선택적 근로시간제(40.7%) 등 유연근로제의 단위 기간 확대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 미국은 '이그젬션' 확대로 날개…한국은 52시간 족쇄

경제 단체와 전문가들은 반도체, AI 등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수적인 첨단 산업 분야의 경우 주요 선진국의 노동 유연화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핵심 인재에 한해 시간 단위 규제를 벗어나 직무 특성과 성과를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제도를 통해 관리직, 전문직, R&D 인력 중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 급여를 받는 이들에게 초과근로수당 등 근로시간 규제를 면제하고 있다. 결국 메가특구를 둘러싼 부처 간 이견은 국가 주력 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근로자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 결과로 풀이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획일적인 근로시간 제한이 연구개발(R&D) 속도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차세대 기술 선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현행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탄력적인 근무 환경을 갖춘 미국·대만 경쟁사들과 달리, 국내 R&D 인력은 주 52시간 규제에 묶여 프로젝트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도체공학회는 전날 최기영 회장의 입장문을 통해 "연구개발직에 일률적이고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는 것은 연구개발 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라며 "연구개발 성과는 단순히 회사에 머무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관리자는 근무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업무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모든 산업계의 근로시간을 일괄적으로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총력전이 벌어지는 첨단 산업의 고소득 R&D 인력에 한해 제도의 족쇄를 풀어주자는 것"이라며 "메가특구 내 핵심 인재를 대상으로 한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이나 유연근로제 기간 확대 등에 대한 전향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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