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 자회사 보유 제약사들 약가 개편 셈법 복잡…선택적 직접생산 검토
전체 약가 방어하면서 경제성 높은 품목 집중…생산 전략 재편
[미디어펜=박재훈 기자]복지부가 원료의약품 직접생산에 대한 약가 가산 기준을 강화하면서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원료 생산·조달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계열사가 생산한 국산 원료는 약가 가산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원료 자회사를 보유한 제약사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제약사들은 원료의약품 자회사와의 합병보다는 기존 계열사 생산체계를 유지하면서 약가 가산 효과가 큰 핵심 품목을 선별해 직접생산 투자를 검토하는 방향으로 대응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기업 단위 약가 가산을 통해 전체 제네릭 품목의 가격 경쟁력을 방어하는 동시에 직접생산 가산을 받을 수 있는 대형 품목에는 자체 원료 생산 역량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 유한양행 연구원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사진=유한양행


이번 제도 개편은 정부가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 기반을 유지하고 원료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원료의약품을 완제의약품과 동일 법인에서 직접 생산할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약가 가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원료 생산 주체가 자회사나 계열사일 경우에는 국내에서 생산한 원료라도 직접생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 합병 대신 선택과 집중…대형 품목에 직접생산 투자

보건복지부가 지난 1일부터 시행한 개정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에 따르면 원료부터 완제까지 품목허가권자인 제약사와 동일 법인에서 생산한 경우 직접생산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원료의약품 등록증, CTD(국제공통기술문서), 제조지시서·제조기록서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해 생산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해당 기준에 따라 원료 생산을 별도 법인에 맡기는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직접적인 약가 가산 혜택에서 제외된다. 유한양행은 유한화학, 종근당은 경보제약과 종근당바이오, 대웅제약은 대웅바이오, 한미약품은 한미정밀화학, 동아에스티는 에스티팜 등을 통해 원료의약품 생산 또는 조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원료 자회사와 합병해 동일 법인 체제를 만드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낮다는 분석이 많다.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은 생산설비와 품질관리, 인허가 체계가 달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약가 가산 하나만을 이유로 수십 년간 구축한 사업 구조를 변경하기에는 비용과 부담이 크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투트랙’ 전략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혁신형·준혁신형 등 기업 단위 약가 가산을 활용해 전체 품목의 약가 하락을 방어하는 한편 직접생산의 경제성이 높은 일부 품목만 자체 생산하는 방식이다.

특히 최근 특허가 만료된 대형 만성질환 치료제가 주요 후보로 꼽힌다. 이미 다수의 제네릭이 출시된 노후 품목보다 시장 내 최초 제네릭 등재 이후 약가 가산 효과를 상대적으로 크게 기대할 수 있는 대형 품목에 원료 생산설비와 인력을 집중하는 것이 투자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 기업별 대응 차별화…국산화·고부가 원료로 돌파

   
▲ 8월부터 시행되는 약가 개편으로 제약사들의 전략 대응이 빨라지고 있다.(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픽사베이

제약사별로는 기존 원료 자회사를 활용하면서 별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나타나고 있다. 대웅제약은 대웅바이오·대웅테라퓨틱스와 함께 스타틴 계열 고지혈증 치료제 원료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2028년까지 180억 원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로 이번 약가 가산 제도와는 별개지만 계열사 간 원료·완제 생산 역량을 연계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종근당은 경보제약과 종근당바이오를 통해 원료를 조달하는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가격 경쟁보다는 고부가가치 원료와 품질 경쟁력을 앞세우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인도산 원료와 단순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 생산기술과 제제·제법 개발 역량을 강화해 선진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유한양행 역시 유한화학을 통한 원료 생산 체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자회사와의 합병보다는 기존 사업 구조를 활용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한미약품과 동아에스티 역시 원료 자회사를 활용하는 기존 생산체계를 유지하면서 직접생산 가산의 경제성이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자체 생산 여부를 따져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계열사 생산을 직접생산에서 제외한 배경에는 제도 악용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다. 복지부는 과거 자회사 생산을 인정했지만 약가 우대를 받은 이후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거나 원료 생산·조달 구조를 변경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동일 법인 생산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기준이 오히려 국산 원료 사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계열사가 원료를 생산해 공급하는 경우에는 약가 가산을 받을 수 없지만 해외에서 저가 원료를 직접 조달하는 경우 비용 측면에서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산 원료 자급화와 공급망 안정이라는 정부 정책 목표와 실제 기업의 경제적 유인이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에는 제약사들이 실제로 어떤 품목을 직접생산 대상으로 선정하고 어느 정도의 투자를 집행하는지가 제도 효과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부 역시 제도 악용을 막으면서 국내 원료 생산 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계열사 생산에 대한 인정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품목을 직접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은 설비와 인력, 품질관리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결국 약가 가산 효과가 큰 대형 품목을 선별해 자체 원료 생산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고 국산 원료 사용을 늘린다는 정책 취지까지 고려하면 향후 제도 보완 여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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