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운업계, 홍해·호르무즈 사태 장기화에 대체 항로 확보 박차
중국 선사 첫 정기 운항 개시…한국도 2주 뒤 부산-로테르담 시험 운항
HMM 등 국적선사 물류비 절감 기대…쇄빙선 비용 미국 제재 우려도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 분쟁 여파로 글로벌 물류망 마비가 장기화되면서 북극항로가 글로벌 해운업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항로 통과에 필수적인 러시아 쇄빙선 호송 대금 지급이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어 국적 선사들의 외교적 리스크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스웨덴 쇄빙전용선의 조감도./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11일 업계에 따르면 전통적인 해상 요충지인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북극항로를 선택하는 글로벌 해운사들이 늘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 지방의 얼음이 녹으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해 거리가 짧아진 데다 분쟁 지역을 회피할 수 있어 물류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중국이다. 중국 해운사 시레전드는 최근 중국 닝보와 영국 펠릭스토우를 연결하는 첫 북극항로 정기 컨테이너 서비스를 개시하며 시장 선점의 신호탄을 쐈다. 이 같은 해운 지형의 변화를 반영하듯 지난해 여름 북극항로를 통과한 선박은 사상 최대인 23척을 기록하며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선사들의 항로 변경은 선박 발주 트렌드도 바꿔놓고 있다. 빙해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내빙선 발주량은 지난해 10여 년 만에 가장 많은 167척이 건조된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보험사 알리안츠 측은 해운업계가 북극항로를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동시에 지정학적 요충지의 분쟁을 피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부산-로테르담 시험 운항…해운업계, 물류 주도권 확보 총력

글로벌 물류 지각변동에 발맞춰 국내 해운업계와 정부의 대응도 빨라졌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북극항로 활용 촉진 과제 발굴'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며 본격적인 화물 유치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화주와 선사, 물류기업을 대상으로 수요를 정밀 조사해 컨테이너와 벌크 등 화물 특성별 유치 가능성을 타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험 운항으로 경험을 축적한 뒤 이르면 오는 2030년까지 정기 상업 항로를 공식 개설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위해 새로운 항로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각종 정부 지원 방안을 수립하고 향후 북유럽 주요 항만과 연계한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를 선제적으로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장 2주 뒤에는 국적 선사의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을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는 북극항로 시험 운항에 돌입하기로 했다. HMM 등 국적 해운사들은 이번 실전 운항을 통해 기존 남방 항로 대비 실제 운항 기간 단축 효과, 연료비 절감 폭, 극지방 운항에 따른 화물 안정성 데이터를 다각도로 검증하며 경제성 평가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 쇄빙선 호송 대금 '암초'…미국 대러 제재 딜레마

해운업계가 북극항로를 통해 차세대 물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외교적 과제도 존재한다. 러시아 매체 로시스카야 가제타에 따르면 한국의 북극항로 상업화 사업의 잠재적 변수는 러시아의 운항 허가 여부보다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방침인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적으로 선박이 북극항로를 안전하게 통과하려면 얼음을 부수며 길을 열어주는 러시아 쇄빙선 호송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적 해운사가 러시아 소속 기관에 쇄빙선 호송 비용 등 서비스 대금을 지불할 경우 이것이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가이드라인에 저촉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다만 현재 미국이 우리 기업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며 한국 정부 역시 잠재적 변수를 인지하고 미국 등 관련국과 선제적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업계에서는 미국과의 협의가 원활하게 타결되지 않고 지연될 경우, 한국 해운사들의 신항로 개척 프로젝트가 일정 부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희망봉 우회 장기화로 운임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북극항로는 필수적인 대안이지만 미국과의 외교적 셈법 없이 상업 운항을 강행했다가 금융·운항 부문에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며 "정부가 관련국들과 협의를 진행 중인 만큼 외교적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면 국적 선사들의 북극항로 상업 운항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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