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7년·용인 8년 걸렸는데… "2029년 가동은 물리적으로 어려워"
총수 선언 후 기업 목소리 실종… 관 주도 '언플'에 현장 우려 팽배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정부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첫 생산공장(팹·Fab) 완공 시점을 2029년으로 못 박고 부지 확보부터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까지 일괄 속도전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 행정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날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광주 군공항 부지를 국가산업단지로 조기 전환하고 국방부, 기후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 속에서 국가 차원의 신속한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가 정권 차원의 성과를 위해 완공 시한을 무리하게 설정하고 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 초기 그룹 총수들의 선언 이후 정작 민간의 구체적인 투자 타당성이나 실행 목소리는 소외된 채 관 주도의 ‘홍보전’만 난무한다는 비판이다.

◆ 총수 선언 후 ‘정부 언플’만 무성… 투자 주체인 기업 목소리 부재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업 초기 총수들의 참여 선언 이후 정작 팹을 짓고 운영해야 할 민간 기업들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보단 관 주도의 홍보성 발표만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반도체 팹 구축은 입지 선정부터 행정 인허가 및 부지 조성, 본 공사, 장비 반입 및 양산까지 고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업이 공장 부지를 결정하는 첫 단계부터 시작해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

가장 신속하게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만 해도 2007년부터 경기도·평택시와 물밑 검토를 시작해 2010년 12월 최종 입지 협약(MOU)을 맺기까지 3년 이상이 걸렸다. 이후 산업단지 지정 승인과 부지 조성 등 착공 전 정지작업에만 3년 6개월이 더 소요됐다. 

2015년 5월 첫 삽을 뜬 뒤 2년 2개월의 공사를 거쳐 첫 번째 팹(P1)에서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7월이다. 초기 입지 검토부터 공장을 가동하기까지 10년, 입지 계약 확정 후 본 가동까지도 7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셈이다.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의 역사 역시 긴 세월이 소요됐다. 2017년 이천 M16의 부지 포화 이후 지자체 간 격렬한 유치전과 내부 타당성 검토를 거쳐 2019년 2월 부지를 확정 발표하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발표가 끝이 아니었다. 토지 보상 주민 마찰, 여주시와의 용수관로 인허가 갈등, 초고압 송전선로 주민 반발 등이 잇따르며 본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행정 절차로만 6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후 지난해 3월에야 첫 팹 본 공사에 들어간 SK하이닉스는 오는 2027년 5월 가동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부지 확정 발표부터 첫 공장 불을 켜기까지 무려 8년 3개월(99개월)이 걸리는 스케줄이다.

◆ ‘착공 전 검토 절차만 수년’… 현장 외면한 탁상행정 우려 

이처럼 기업이 전력, 용수, 인력 수급, 교통망 등을 수년간 면밀히 따져 결정해야 할 입지와 투자 시기를 정부가 ‘광주 군공항 부지, 2029년 완공’으로 먼저 못 박은 뒤 정책 금융으로 유인하려는 방식은 전형적인 관 주도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일본이 정부 주도로 ‘엘피다’를 만들었다가 무너졌고,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추진했으나 ‘칭화유니’ 부도 등 치명적인 부실을 남긴 것처럼 시장 원리를 외면한 관 주도의 계획은 자원 왜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는 2028년 중순까지 광주 군공항의 기능을 타 기지로 임시 배치하고 국가산단 조성을 병행해 2029년 1차 완공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반도체 산단이  지어지기까지 거쳐야 하는 물리적 시차와 각종 난제를 간과한 낙관론에 가깝다.

특히 군공항 이전은 지자체 간 이해관계 갈등, 주민 반발, 국방부 협의 등 그 어떤 산업단지보다 복잡한 행정 과제다. 

빠르게 가동된 평택 사례와 비교해도 2028년 중순 임시 배치 완료와 산단 조성을 동시 추진해 2029년 완공하겠다는 타임라인은 행정 인허가의 무게를 전면 무시한 ‘탁상행정식 무모함’이자 부실시공, 일정 차질 리스크를 자초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박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입지와 완공 시기까지 지시하는 직접적인 플레이어가 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사업성을 점검해야 할 기업의 실무적 목소리는 묻히고 관 주도의 속도전과 홍보만 앞서는 현재의 구조는 산업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지 검토에만 수년, 착공과 인프라 구축, 양산 셋업에만 최소 3~5년 이상이 걸리는 국내외 현실과 기업의 자발적 수용성이 반영되지 않은 관 주도 행정이 국가 산업 전체의 리스크로 작용하지 않도록 철저한 타당성 검증이 선행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