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V·AI 비서·구독 서비스가 새로 그리는 완성차 지형도
현대차·테슬라·GM 등 글로벌 완성차 디지털 전환 가속
판매량 중심 경쟁서 데이터 활용·고객 경험 확보전으로
자동차 산업의 경쟁 축이 하드웨어에서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소프트웨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자율주행과 차량 내 AI,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가 확산하면서 자동차의 성능뿐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이를 기술과 서비스로 연결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AI 전략과 이에 따라 달라지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 구도와 사업 모델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연지 기자]자동차 산업의 경쟁 공식이 바뀌고 있다. 엔진과 주행 성능, 디자인 등 하드웨어 경쟁을 넘어 차량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이를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동차가 출고 시점에 기능이 완성되는 제품에서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로 전환되면서다.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용 운영체제(OS)와 OTA(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자율주행, AI 비서 등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차량 판매 이후에도 기능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추가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 고객과의 접점을 유지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1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SDV와 AI를 중심으로 차량의 개발 구조와 사업 모델을 재편하고 있다. 과거 자동차의 가치가 엔진과 플랫폼 등 물리적 성능을 중심으로 결정됐다면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 현대차 플레오스./사진=현대차 제공


◆ 출고 후에도 진화하는 자동차…핵심은 '플랫폼'

SDV 전환의 핵심 중 하나는 차량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해 소프트웨어를 독립적으로 개발·업데이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OTA를 활용하면 스마트폰처럼 차량을 구매한 이후에도 기능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차량 판매 이후에도 고객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브랜드 '플레오스'를 중심으로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플레오스는 자체 차량용 OS와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 개발자 플랫폼 등을 아우르는 소프트웨어 체계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하고 고성능 차량용 컴퓨터와 존 컨트롤러 중심으로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단순화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기능 확장이 용이하도록 설계됐다.

올해 5월 출시된 '더 뉴 그랜저'에는 플레오스 커넥트가 처음 적용됐다.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AAOS)를 기반으로 스마트폰과 유사한 사용자 환경을 구현하고, 외부 개발자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 있는 '앱 마켓'도 갖췄다. OTA를 활용해 차량 구매 이후에도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플레오스 커넥트 적용 차량을 현대차·기아·제네시스를 합쳐 2030년 약 2000만 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 에이전트 '글레오 AI(Gleo AI)'도 탑재했다. 기존 음성인식보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기반으로 차량 기능을 제어하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현대차그룹은 플레오스 커넥트를 SDV 전환의 첫 결과물로 제시하면서 AI와 운전자 간 상호작용을 확대하고 있다.

자율주행에서도 차량 데이터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아는 양산 차량에서 축적되는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엔드투엔드(E2E) 자율주행 모델을 고도화하는 '데이터 플라이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엔비디아 DRIVE Hyperion을 기반으로 레벨2부터 레벨4까지 확장 가능한 통합 자율주행 아키텍처를 구축할 계획이다. 실제 차량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AI 모델을 학습·개선한 뒤 이를 다시 양산 차량에 적용하는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체 운영체제 'MB.OS'를 기반으로 차량 기능과 디지털 서비스를 통합하고 있다. 올해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된 신형 CLA에는 MB.OS와 AI 기반 차세대 MBUX가 적용됐다. BMW도 신형 iX3를 시작으로 BMW Operating System X와 AI 기반 지능형 개인 비서를 확대하고 있다. BMW는 2027년까지 노이어 클라쎄 기술을 총 40개의 신차와 부분변경 모델에 적용할 계획이다.

◆ 차가 지속 수익원으로…커지는 '소프트웨어 경제'

SDV 전환은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자동차 판매 시점에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소프트웨어 기능과 커넥티드 서비스, 운전자 보조 기능 등을 유료로 제공하면 차량을 판매한 이후에도 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글로벌 업체에서는 소프트웨어 사업이 실제 구독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다. GM은 운전자 보조 시스템 '슈퍼크루즈'를 핵심 디지털 서비스로 키우고 있다. GM은 올해 2분기에 슈퍼크루즈 신규 가입자가 약 7만 명 늘었으며 연말 가입자가 85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년간의 선결제 이용 기간이 끝난 뒤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는 비율도 30~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GM의 커넥티드 서비스 '온스타'도 가입자 확대와 함께 소프트웨어 매출을 키우고 있다. 올해 2분기 말 온스타 관련 이연수익은 6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0% 증가했고, 같은 분기 인식 매출은 8억 달러로 20% 이상 늘었다. GM은 올해 가입자가 약 100만 명 증가해 연말 13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말 기준 이연수익도 약 75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테슬라도 FSD(Full Self-Driving·Supervised)를 일시불 또는 구독 방식으로 제공하며 소프트웨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유료 FSD 이용자는 148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했다. 테슬라는 2분기 FSD 신규 순증 가입자 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북미 신차 가운데 FSD를 선택한 비율도 55%를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기간 테슬라의 영업이익은 3억98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했다. 영업비용이 47% 증가한 가운데 테슬라는 AI와 제조·인프라 등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AI를 통한 장기적인 수익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투자 부담 역시 함께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자동차 업체들의 사업 영역도 넓히고 있다. 자체 OS와 앱 마켓을 구축하면 완성차 업체는 차량 제조사를 넘어 소프트웨어 개발사와 콘텐츠 업체가 참여하는 생태계를 운영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도 플레오스의 개발자 플랫폼을 외부 개발자에게 개방하고 앱 마켓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차량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결국 AI 시대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차량 한 대의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차량을 연결해 확보한 데이터를 AI 학습과 서비스 개선에 활용하고, 이를 다시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이 단순 판매량보다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규모에 좌우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확보한 데이터를 서비스와 새로운 고객 경험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가 앞으로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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