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공급망 다변화 시도…미·중 갈등 새 불씨?
중국 ‘보조금 굴기’ 속 한국 메모리…‘초격차’가 답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애플이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D램의 주요 제품 부품 공급망 편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급망 다변화와 가격 협상력 확보를 노린 행보지만, 그 이면에는 ‘기업의 원가 방어’와 ‘지정학적 규제가 야기한 시장 왜곡’, 그리고 ‘국가 자본을 등에 업은 비시장적 공세’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중국 내 판매 제품 탑재를 목표로 CXMT와 메모리 부품 공급에 관한 초기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아이폰과 맥북 등 다수 제품을 대상으로 한 시범 적용 검토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모리 단가 급등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 압박이 가중되자 원가 절감을 위한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애플이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D램의 주요 제품 부품 공급망 편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급망 다변화와 가격 협상력 확보를 노린 행보지만, 그 이면에는 ‘기업의 원가 방어’와 ‘지정학적 규제가 야기한 시장 왜곡’, 그리고 ‘국가 자본을 등에 업은 비시장적 공세’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 애플 매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CXMT가 미 국방부의 중국 군사기업 명단(1260H 리스트)에 포함된 제재 대상이라는 점에서 미 연방 의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부품 조달을 통한 기업의 원가 절감 시도가 지정학적 안보 이해관계와 부딪히면서, 이번 사안이 미·중 반도체 갈등의 새로운 불씨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 기업의 원가 절감과 안보 규제의 충돌  

글로벌 메모리 칩 가격 인상 압박 속에서 상대적으로 단가 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공급처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행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기존에 거래하던 부품사에 의존하기보다 신규 진입자를 유입시켜 유효 경쟁을 유도하는 것 역시 구매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리스크 관리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일각에서는 애플이 그간 ‘슈퍼 갑’의 지위를 활용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과도한 단가 인하를 요구해왔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그러나 계약은 결국 양사 간의 이익이 합치하는 지점에서 성립한다. 국내 기업들 역시 안정적인 대규모 공급 물량 확보와 공장 가동률 유지 등 손해보다 실익이 컸기에 거래에 응했을 것이라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때문에 원가 방어를 위한 애플의 방침 역시 구매자가 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 합리적인 시장 행위가 국가 안보 규제에 의해 막히고 있다는 점이다. 미 국방부의 ‘1260H 리스트’ 등 지정학적 규제는 애플이 가장 효율적인 부품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개입은 생산 비용 증가를 유발하고, 최종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후생 후퇴’라는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다.  

◆ 중국의 비시장적 ‘보조금 굴기’… 시장 교란이자 양날의 검

그러나 단순히 이 현상만 놓고 미국 정부의 안보 규제만을 비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미국 정부 개입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급과 시장 왜곡이라는 ‘불공정 경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자본을 앞세운 상대국의 비시장적 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는 명분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CXMT가 급성장하며 저가 공세를 펼칠 수 있는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정책 지원이 존재한다. 이는 기술이나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경쟁력이 아닌 국가 자본에 의한 가격 파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시장에 침투하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의 건전한 가격 발견 기능을 교란한다는 비판이다.  

또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굴기’가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 역시 우세하다. 정부의 보조금만을 노린 함량 미달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난립하면서 우한훙신반도체(HSMC)나 칭화유니그룹, AMS 같은 유수의 기업들이 방만한 경영 끝에 무더기 파산하거나 구조조정을 겪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기 때문이다. 

국가 자본 투입이 단기적으로는 CXMT 같은 일부 선도 기업의 외형 성장을 이끌었을지 몰라도, 시장 질서가 상실된 보조금 만능주의가 장기적으로 중국 반도체 생태계의 자생력과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나오는 이유다.  

◆ 공급자 우위 속 한국 반도체 전략은?  

애플의 중국칩 검토가 국내 반도체 산업에 미칠 단기적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AI 열풍으로 주요 제조사들이 HBM과 서버용 D램에 집중하면서 모바일 D램 수급이 어려워져 글로벌 시장은 여전히 강력한 ‘공급자 우위’ 구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XMT 역시 중국 내수 빅테크 수요 부족 등을 이유로 높은 단가를 고수하고 있어, 애플이 CXMT를 활용해 국내 2사의 납품 단가를 낮추려던 전략은 즉각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안주할 수는 없다. CXMT가 LPDDR5/5X 등 모바일 D램 영역으로 전선을 넓히며 글로벌 점유율을 7~8%대까지 끌어올린 흐름은 분명한 경고 신호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중국 내수용 제품에 납품 실적이 쌓이면 중국 시장 내 한국 기업의 입지는 단계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 메모리 2사가 나아갈 길은 명확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CXMT가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내수 수요를 바탕으로 범용 D램 공급을 늘리는 동안, 국내 기업은 단순 가격 싸움에 연연하기보다 초격차 선단 공정(1c nm 이하) 기반의 HBM3E·HBM4, CXL 등 고부가가치 차세대 메모리 독점 체제를 조기에 구축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CXMT가 저가·중가형 시장의 물량을 받쳐주는 사이, 국내 기업은 고마진 중심의 체질 개선을 가속화해야 한다”며 “규제와 보조금이 난무하는 격랑의 시대, 한국 반도체를 지키는 힘은 결국 시장이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 기술 격차’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