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하수정의 '세계에서 가장 큰 보이는 손, 노르웨이 국부펀드’
입력 2026-08-14 11:01:44 | 수정 2026-08-14 11:07:57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3200조 굴리는 세계 최대 큰 손, 노르웨이 연기금의 7가지 투자 원칙
북유럽 전문가 하수정 소장 저술, ‘한국형 국부펀드’에 이정표 제시
북유럽 전문가 하수정 소장 저술, ‘한국형 국부펀드’에 이정표 제시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운용 자산 2조 2000억 달러(약 3200조 원). 대한민국 1년 예산의 4배가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큰손',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 글로벌(GPFG)의 자산 규모다. 1996년 단 3000억 원의 예치금으로 시작된 이 자금은 어떻게 30년 만에 1만 배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이뤄냈을까. 단순히 자원 운이 좋았던 덕분일까.
북유럽 연구 및 지속가능경영 분야 전문가인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이 새로 펴낸 '팸플릿 #9 세계에서 가장 큰 보이는 손, 노르웨이 국부펀드'(부제: 위기를 관리하는 기업 고르는 법)는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하고도 깊이 있는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경이로운 수익률 뒤에 숨은 철학과 7가지 투자 원칙,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와 투자자들에게 던지는 시대적 화두를 다룬 신간이자 탁월한 서평집이다.
석유에서 캐낸 부, 금융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바꾸다
노르웨이는 1969년 해상 유전 발견으로 단숨에 자원 부국이 되었지만, 자만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유전 개발이 도리어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자원의 저주'를 막기 위해, 현 세대의 풍요가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1990년 국부펀드를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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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유럽연구소 하수정 소장이 새로 펴낸 '팸플릿 #9 세계에서 가장 큰 보이는 손, 노르웨이 국부펀드'./사진=플랫폼9와3/4 제공 | ||
놀라운 점은 해외에만 투자하는 이 펀드의 전체 자산 중 원금(석유·가스 수익) 비중은 절반에 못 미치며, 무려 60% 이상이 '투자 수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두면서도 주식 부문에서 연 19%가 넘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책은 이 같은 기적의 비결로 ‘많이 얻기보다 적게 잃는’ 위험 관리 원칙을 꼽는다.
△ 장기적 재무 수익과 엄격한 기업 윤리의 균형
△ 개별 기업 지분 10% 제한
△ 시장 지수(FTSE Global All Cap Index) 수용
△ 많이 얻기보다 적게 잃는 목표
△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는 책임 경영
△ '배제'보다 '대화'를 통한 기업 개선 유도
△ 모든 배제 결정문과 내역을 전 세계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보이는 손’ 역할 등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 반부패, 성실 납세, 인권 보호 등 ESG 가치를 단순한 도덕적 잣대가 아닌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분석한 2025년 기준 한국 기업 9곳(배제 8곳, 관찰 1곳)의 실제 투자 배제 및 관찰 사례가 담겨 있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사전 경고를 받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독보적 전문성이 담긴 북유럽 인사이트
저자인 하수정 소장은 포항 한동대(미국법)와 스웨덴 웁살라대(지속가능발전)를 거쳐 한겨레경제연구소, 서울시장 연설 비서관, 스웨덴 경영 컨설팅 업체를 거친 베테랑 연구자다. 현재 EU 규제 대응 및 지속가능경영 솔루션을 제공하는 네덜란드 기업의 한국 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현장에서 쌓아온 북유럽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무적 전문성을 이번 책에 온전히 녹여냈다.
저자는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사례를 통해 "높은 수익성과 사회적 영향력은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는 핵심 레슨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게 전달한다. 특히 미·이스라엘 전쟁 관련 빅테크 투자 철회 권고에 대한 딜레마 등 최근의 생생한 이슈까지 짚어내며 펀드의 입체적인 고민을 균형감 있게 담아냈다.
지금 한국 사회에 이 책이 꼭 필요한 이유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호황 등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는 2026년의 한국 사회는, 이제 이 수익을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폭발적인 수익을 재원으로 한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 논의가 닻을 올린 지금, 이 책은 우리가 어떤 가치관과 원칙 아래 미래 투자를 설계해야 하는지 명확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단순히 국가적 연기금 운용자 뿐만 아니라, 단기적 수익률 추격에 지친 개별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이 책은 유효하다. "미래 세대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데에 돈을 투자할 수는 없다"는 노르웨이 국민들의 단단한 지지처럼, 주주로서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투자 기준에 두는 관점이야말로 불확실한 시장에서 내 자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헤지(Hedge) 수단임을 책은 증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