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에 호르무즈 원유 수송량 2000만 배럴서 370만 배럴로 급감
사우디·UAE, 우회 송유관 추가 증설 및 한국·일본 등 해외 저장소 확보 추진
완공 시 국내 정유 4사 물류비 경감 기대…업계, 비중동 도입 확대 선제 대응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 리스크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지역 산유국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육상 우회 송유관 증설과 해외 대형 저장시설 구축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14일 해상운송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중동 전쟁 발발 이전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에 달했던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수송량은 이란의 해협 봉쇄 위협과 기뢰·미사일 공격 여파로 최근 하루 370만 배럴 수준까지 급감했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산유국들의 우회 인프라가 향후 차례로 완공될 경우 수급 불확실성과 전쟁위험할증금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한편 당장의 수급 위기에 대응해 비중동 원유 도입 확대와 유종 다변화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중동 리스크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지역 산유국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육상 우회 송유관 증설과 해외 대형 저장시설 구축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사진=제미나이 제공


◆ UAE·사우디, 우회 송유관 2배 증설 추진…아시아 해외 저장고도 확대

걸프 산유국들은 단일 해상 통로에 원유 수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대체 수송로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UAE는 오만만 연안 푸자이라 항구와 내륙 아부다비 유전을 잇는 제2 원유 송유관을 건설하고 있다. 완공될 경우 우회 수송 능력은 기존 하루 180만 배럴에서 360만 배럴로 2배 확대되며, 아부다비 육상 원유 대부분을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 인도양으로 직접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는 동부 해안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에 착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를 통해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이어지는 1,201km 길이의 '동서 송유관' 가동률을 최대치인 하루 700만 배럴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는 여기에 하루 100만~200만 배럴의 수송 용량을 추가 확장하고 정제 석유제품 전용 제2 병렬 송유관 건설까지 검토하고 있다. 쿠웨이트, 이라크, 요르단 등 인근 국가들 역시 아카바항 및 지중해 연안으로 연결되는 송유관 복구와 신설 논의에 합류한 상태다.

이와 함께 산유국들은 원유 주요 소비국인 한국과 일본, 인도 등지에 원유 저장 용량을 대폭 늘리는 '물리적 보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통제되더라도 소비지 현지 저장고에 옮겨둔 원유를 공급함으로써 시장 충격을 흡수하기 위함이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 안보가 최우선 순위로 올라섰다며 추가 저장 능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완공시 물류비 경감 기대…정유 4사 비중동 도입 확대·기술 고도화 대처

걸프 산유국들의 이러한 우회 인프라가 단계적으로 완공되고 본궤도에 오르면 국내 정유업계 역시 수급 안정과 물류 비용 절감이라는 중장기적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원유운반선(VLCC)이 분쟁 수역인 호르무즈 해협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푸자이라나 얀부 등 해협 외곽 항만에서 원유를 선적할 수 있게 되면, 정유사들이 부담해야 했던 거액의 전쟁위험할증금과 적재 운임이 상당 부분 경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회로 완공까지 시일이 걸리는 만큼, 국내 정유 4사는 중동 지정학 리스크 상시화에 대응해 근본적인 원유 도입선 다변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주(미국·브라질)와 아프리카, 유럽 등 비중동 지역 원유 도입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한편, 한국 내에 유치된 산유국들의 공동 비축유와 상업용 저장시설 물량을 활용해 공장 가동률 저하 위험을 방지하고 있다.

아울러 정유 4사는 공장 고도화 설비를 정밀화해 가격이 저렴한 중질유 및 다양해진 원유 성상을 효율적으로 정제하는 기술 유연성을 극대화했다. 값싼 원료를 들여와서도 고부가가치 제품을 뽑아낼 수 있는 운영 구조를 다짐으로써 글로벌 원유 수급 불안 속에서도 정제마진 하락을 선제적으로 방어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장기화되는 지정학 리스크…유연한 공급망 구축이 생존 분수령

우회 송유관이 향후 순차적으로 가동되더라도 수송 원유의 유종별 성상과 용량 변동은 국내 정유사들이 풀어야 할 실무 과제로 꼽힌다. 우회로로 수송되는 원유의 경질유 및 중질유 비율에 따라 정유 공장의 정제 효율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현장에서는 유종별 공급 추이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에 대응해 국내 정유업계는 선박 운항 경로를 실시간으로 조율하고 현물 시장에서의 기민한 상선 구매와 유연한 재고 관리 체계를 고도화했다. 산유국의 공식판매가격(OSP) 변동 추이를 분석해 구매 타이밍을 최적화함으로써 지정학적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산유국들의 우회 인프라 투자가 향후 완공되면 물류비 경감과 수급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소요되고 중동 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인 만큼 비중동 원유 수입망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정제 설비의 운용 효율을 높여 공급망 충격에도 굴하지 않는 대처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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