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철강 이은 산업계 'N% 성과급' 갈등 후폭풍 조선업계로 전이
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수주 호황 속 원·하청 동시 교섭 난항 직격탄
도크 회전율 핵심인 건조 밸류체인 붕괴 및 납기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우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의 선별 수주를 통해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국내 조선업계가 원청과 하청 노조가 동시에 쟁의행위에 나서는 이중 하투(夏鬪) 국면에 진입하며 조업 중단 위기에 직면했다. 공정 관리와 납기 준수가 경쟁력인 조선업 특성상 파업이 실제 조업 중단으로 이어질 경우 도크 회전율 하락과 지체상금 발생 등 흑자 기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자동차의 10년 만의 전면 파업 돌입과 포스코의 임금협상 결렬 등 산업계 전반에 휘몰아친 'N% 성과급' 갈등 후폭풍이 조선업계로 번진 것으로 파악됐다. 완성차와 철강에 이어 중후장대 산업의 핵심 축인 조선업계까지 임단협 결렬에 따른 줄파업 위기가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사진=HD현대 제공


이번 파업 위기 기저에는 조선업계가 안착한 슈퍼사이클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노사 간의 시각차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구조조정과 저가 수주 시절의 고통을 감내했던 현장 노동자들은 본격적인 영업이익 흑자가 창출되는 현 상황에 맞춰 파격적인 임금 인상과 성과 보상을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미래 친환경 기술 투자와 글로벌 공급망 확장을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하다며 맞섰다.

무엇보다 올해 조선업계의 쟁의 행위는 원청 노조의 파업 예고뿐만 아니라 하청 노조와의 교섭 문제까지 얽힌 이중 하투 국면으로 전개돼 심각성을 더했다. 원청과 하청이 하나의 야드에서 맞물려 일하는 다층적 노동 생태계에서 동시다발적인 쟁의가 예고되면서 선박 건조 밸류체인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 흑자 궤도 오른 조선업계, 파업 리스크 비상

수주 랠리를 펼치며 흑자 안착을 이뤄낸 HD현대중공업은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촉구하는 원청 노조의 요구에 직면했다. 최근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진출 등 글로벌 밸류체인 확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절실한 사측의 재무적 전략과, 호실적에 상응하는 즉각적인 현금 보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교섭에 난항을 겪었다.

한화오션 역시 원청 노조의 반발과 더불어 거제 지역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가 일면서 생산 현장 긴장감이 높아졌다. 원청 소속 직원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근로해 온 하청 노조가 실질적인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촉구하면서 파업 카드를 꺼내들었고 이는 선박 건조의 기초 뼈대를 만드는 블록 조립 공정의 차질을 예고했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다른 조선사들 역시 릴레이 파업 분위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숙련 인력 유출 방지와 노무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잇달아 인도하며 견조한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인건비 상승 압박과 조업 차질이 하반기 수익성에 미칠 악영향을 방어하기 위해 비상 대응 체제를 가동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도크 멈추면 흑자 신기루…지체상금 폭탄 우려

조선업계의 이중 하투는 단순한 노무 비용 증가를 넘어 선박 건조 밸류체인의 핵심 경쟁력인 도크 회전율을 마비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수십만 개의 부품과 거대한 블록을 한정된 공간인 야드와 도크에서 조립해 완성하는 조선업의 특성상, 특정 하위 공정에서 파업으로 병목 현상이 발생하면 후행 공정 전체가 연쇄적으로 멈춰 서는 구조적 취약성을 노출했다.

조업 중단이 장기화돼 도크를 제때 비워주지 못하면 뒤이어 건조를 기다리는 수주 물량 전체 일정이 밀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경우 발주처인 선주사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지체상금(납기 지연 배상금)을 물어야 하며 이는 영업이익 흑자를 순식간에 증발시키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흑자 잔치는 '선박의 적기 인도'가 보장될 때만 유지될 수 있는 구조다. 파업으로 인한 납기 지연은 K-조선이 글로벌 시장에서 쌓아온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 스스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자충수가 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흑자를 내고 있는 현시점에서 파업으로 도크가 멈춰 서는 것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이라며 "하청부터 원청까지 이어진 이중 하투가 현실화돼 납기 지연에 따른 대규모 지체상금이 발생한다면 산업의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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