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정책 전환…정부, 매년 적정 벼 재배면적 등 수급계획 수립 법제화
논타작물 지원 근거 마련…공급과잉·가격 하락 땐 정부 대응도 의무화
'양곡수급관리위원회’ 신설…양곡수급계획, 수급안정책 수립·시행 심의
[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쌀 공급과잉이나 가격 급락이 발생한 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벼 재배면적부터 조절해 수급 불안을 사전에 관리하는 체계가 본격 가동된다. 

수급 불안이 현실화 될 경우는 정부가 매입 등을 포함한 수급안정대책을 마련하고 이행해야 하는 등 정부의 사후 책임도 한층 강화된다.

   
▲ 개정된 ‘양곡관리법’이 27일부터 시행돼 정부가 매년 적정 벼 재배면적 등 수급계획 수립을 해야 한다./자료사진=농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는 개정된 ‘양곡관리법’이 27일부터 시행된다고 26일 밝혔다. 지난해 8월 26일 개정된 양곡법은 선제적인 양곡 수급조절을 제도화하고 불가피한 수급 불안에 대해서는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식품부는 법 시행에 맞춰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도 마쳤다.

이번 개정에는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시장 상황에 따라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매년 적정 생산 규모를 미리 설정하고 관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개정 양곡법은 정부가 매년 양곡수급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계획에는 적정 벼 재배면적과 논타작물 재배면적 등이 포함된다. 특히 기존에 정부관리양곡에 한정됐던 수급계획의 범위를 전체 양곡으로 확대해 정부의 수급관리 범위를 넓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법 시행에 앞서 올해 2월 ‘2026 양곡수급계획’을 마련하고 올해 쌀 적정 재배면적 등을 설정했다. 현장에서 선제적 수급조절이 작동할 수 있도록 전략작물직불제 예산도 대폭 확대했다. 

올해 전략작물직불제 예산은 4196억 원으로 지난해 2440억 원보다 약 72% 늘었다.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에 대한 지원 근거도 법에 명시됐다. 단순 생산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농업인이 벼 대신 타 작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 생산구조 자체를 조정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를 통해 쌀 공급과잉을 사전에 완화하고 수급 균형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일정 기준 이상의 쌀 초과생산이나 가격 하락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매입 등을 포함한 수급안정대책으로 ‘적정 재배면적 설정→타작물 전환 지원→수급 모니터링→필요시 정부 매입’으로 이어지는 사전·사후 관리체계를 법제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수급관리 과정에서 생산자와 유통업계, 소비자, 전문가 등의 참여도 확대된다. 

개정법에 따라 ‘양곡수급관리위원회’가 신설된다. 위원회는 농식품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15명 이내로 구성되며, 위촉직 위원의 3분의 1 이상은 양곡 수급 관련 생산자단체 대표로 구성하도록 했다.

양곡수급계획을 비롯해 정부양곡수급계획,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존에도 양곡수급안정위원회가 운영됐지만,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법률상 위원회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수급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자와 유통업계, 소비자 등 산업 주체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토록 했다.

해당 연도의 수급 상황을 바탕으로 심의한 대책을 정부가 이행하도록 의무화해 과거처럼 시장 상황을 지켜보다가 필요할 경우 정부가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법률에 따라 정부의 사후 책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혜련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양곡법 시행으로 쌀 수급을 사후에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방하는 체계가 강화됐다고 강조했다. 또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통해 생산자·유통업계·소비자 등이 함께 신뢰에 기반한 양곡수급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제도의 성패는 법률 자체보다 적정 재배면적을 얼마나 정확하게 산출하고 농가의 실제 작목 전환을 얼마나 유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벼 재배를 줄이는 것이 곧바로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략작물직불제 등 지원책이 현장에서 충분한 유인으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수급 불안시 정부 매입이 법적 의무로 강화된 만큼 시장에서는 정부의 개입 기준과 규모가 예측 가능하게 운영되는지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정부가 지나치게 늦게 개입하면 가격 급락을 막기 어렵고, 반대로 반복적인 매입이 시장의 과잉생산 신호를 약화시킬 경우 구조적인 공급과잉이 고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개정 양곡법의 과제는 정부 매입을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매입이 필요해지기 전에 생산량과 재배면적을 조정할 수 있는 수급관리 체계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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