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부터 나타난 고용 충격… 사무직 넘어 서비스까지 영향 확대
AI 고도화할수록 인간의 업무 과정·판단 가치↑… '경험 단절' 우려도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을 빠르게 대신하면서 일자리와 일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년층부터 고용 충격이 가시화되면서 사람이 일을 통해 경험을 쌓고 숙련자로 성장해온 '경력 사다리'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일하며 축적한 경험과 판단은 더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미디어펜은 이번 기획을 통해 AI가 사람의 역할을 제한하는 미래가 아닌 인간의 능력을 넓히는 기술로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AI가 사람의 일을 하나둘 대신하면서 일자리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무·전문직부터 제조·물류 현장까지 AI가 쓰이는 곳이 넓어지는 가운데 청년층에서는 이미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다. 취업문이 좁아지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초년생이 일을 배우며 경험을 쌓을 기회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정작 AI는 더 똑똑해지기 위해 인간이 일하며 남긴 기록과 판단,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일할 기회는 줄어드는데 사람이 쌓은 경험은 더 귀해지는 역설이 AI 시대의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사진=AI 이미지


27일 업계에 따르면 AI 도입이 활발한 업종을 중심으로 청년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청년 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000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26만8000개(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사라졌다.

업종별로는 정보서비스업의 청년 취업자가 4년 동안 31.4% 줄었다. 출판업은 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은 16.6% 감소했다. 챗GPT 등장 이후에는 대졸 청년층의 평균 실업률이 전문대졸 이하보다 높게 나타나는 변화도 확인됐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 개 늘었고 이 가운데 75.2%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증가했다. 기업과 산업에 대한 경험, 조직 내부 사정과 업무 맥락을 이해하는 경력자는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이 맡아왔던 업무는 상대적으로 자동화하기 쉽다는 분석이다.

아직 AI가 고용시장 전체를 흔들 정도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층에서 충격이 먼저 나타난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구직 중인 청년 가운데 63.8%가 향후 5년 안에 자신이 희망하는 직무가 AI로 대체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조사 결과도 있다.

◆ 취업문 좁아지면… '경험할 기회'도 사라져

청년 일자리 감소는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것 이상의 문제를 낳는다. 회사에 들어간 신입사원은 처음부터 복잡한 의사결정을 맡지 않는다. 주로 자료를 찾고 정리하거나 선배가 만든 결과물을 따라 해보고, 작은 업무에서 실수와 수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더 큰 일을 맡는다. 지금의 경력자들도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경험과 판단 기준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AI가 빠르게 대신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과정과 상당 부분 겹친다. 자료 조사와 문서 작성, 번역, 코딩, 데이터 분석 등은 생성형 AI가 이미 폭넓게 쓰이는 분야다. 최근에는 AI 에이전트가 기업 내부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개별 작업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업무를 연이어 처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사무직뿐 아니라 제조·물류 현장에서도 AI가 사람의 업무를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AI가 현실 공간을 인식하고 직접 행동하는 피지컬 AI가 발전하면서 로봇은 미리 입력된 동작을 반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변 상황에 따라 작업 방식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로봇과 자율시스템으로 인해 2030년까지 새로 생기는 일자리보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500만 개 더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로봇이 단기간에 사람을 대규모로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려면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하고 비용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다만 생성형 AI가 사무직의 업무를 바꾼 데 이어 피지컬 AI가 발전하면서 제조·물류·운송 등 현장에서 사람이 해온 일까지 자동화 대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당장 한 기업만 놓고 보면 AI가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위해 신입사원을 새로 뽑지 않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 입장에서는 AI 활용으로 인건비를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택이 확산되면 장기적으로는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이를 '인재 파이프라인' 문제로 짚었다. 청년이 비교적 쉬운 업무에서 시작해 시행착오를 겪고 선배의 피드백을 받으며 실력을 쌓을 기회가 줄면서 향후 숙련인력 공급까지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일자리 줄이는 AI, 정작 '사람의 경험'을 배운다

이 가운데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는 AI가 늘어날수록 정작 AI를 고도화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경험과 판단은 더욱 중요해지는 모습이다. 인터넷에 공개된 글과 이미지처럼 이미 만들어진 자료를 학습하는 데서 나아가 사람이 실제 업무에서 문제를 풀고 판단하는 과정까지 데이터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특히 복잡한 업무일수록 결과만으로는 전문가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알기 어렵다. 같은 자료를 놓고 무엇을 먼저 살피는지, 여러 선택지 가운데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등은 오랜 업무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AI 기업들이 완성된 지식뿐 아니라 사람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관심을 두는 배경이다.

기업 내부의 업무 기록도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로 떠오르고 있다.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 회의 기록 등에는 업무가 어떤 순서로 진행됐고 구성원들이 어떤 의견을 주고받으며 결론에 도달했는지가 담겨 있다. 공개된 인터넷 자료에서는 얻기 어려운 실제 조직의 업무 방식과 판단 과정을 학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가치가 커지고 있다.

분야별 전문가를 AI 학습에 직접 투입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인력이 복잡한 문제를 직접 풀거나 AI가 내놓은 답변을 평가하고, 기업은 이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다시 모델 학습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AI가 스스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전문적인 판단과 노하우를 결국 인간에게서 확보하는 것이다.

AI 성능이 높아질수록 이런 데이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AI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실제 업무를 맡으려면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고 예외적인 문제에도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AI가 사람의 일을 더 많이 맡을수록 인간이 현장에서 축적해온 경험을 보다 정교하게 학습해야 한다.

현재 AI가 학습하는 전문성과 노하우 역시 오랜 기간 인간이 직접 업무를 수행하며 축적해온 결과물이다. 이미 쌓인 경험을 AI에 학습시키는 것과 새로운 경험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제언이 나온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AI가 실제 업무를 수행하려면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판단과 경험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며 "AI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속도만큼 새로운 경험과 전문성을 만들어낼 인간의 역할까지 함께 줄어든다면 장기적으로는 기술 발전에도 한계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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