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평온, 현장은 얼음판"… 전체 실업률 2% 뒤에 숨은 '쉬었음' 40만
'기업 부도' 급성 비극 1997년 vs '신입 진입 차단' 만성 고사 2026년
통계표에 찍힌 실업률 2%대의 평온함 뒤에 대한민국 청년 고용 시장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내수 침체와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신규 채용 문은 굳게 닫혔고, 구직 활동을 포기한 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쉬었음' 청년은 4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미디어펜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채용 한파와 현재의 고용 현상을 비교·분석해, 체감온도가 차가워진 구조적 원인과 민간 채용 동력을 살릴 해법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은 2.8% 안팎을 기록하며 지표상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 수치상으로는 고용 대란이나 채용 절벽을 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노동 전문가들은 이 지표에 착시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표면적인 낮은 실업률과 청년 구직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고용 사정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일 학계 및 경제계에 따르면 지난 1997년의 위기가 전 산업군과 전 세대에 걸친 전방위적 감원에 의한 '급성 충격'이었다면, 현재는 청년층의 신규 채용문이 좁아지며 나타난 '만성적 구조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의 채용 난항을 국내 고용 시장에 대규모 충격이 가해졌던 시기인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두 시기의 고용 위기는 구조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대기업의 정기 공채 폐지도 신입 진입 문턱을 높였다. 2019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 이후 LG, SK, 롯데 등 주요 그룹이 순차적으로 수시 채용을 도입했다. 현재 4대 그룹 중 정기 공채를 유지하는 곳은 삼성이 유일하다. /사진=연합뉴스

◆ 1997년 '급성 고용 충격'…  2026년은 '구조적 고용 난항'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고용 시장을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기업 부도'와 '대량 정리해고'였다. 대기업과 금융사가 줄줄이 무너지며 수십 년간 일터를 지키던 인력의 감원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기업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던 시기였기에 신규 채용 역시 전면 동결됐다. 기존 인력 감원과 신입 미채용이 동시에 터진 전대미문의 충격이었다. 이는 지표상으로도 즉각 나타났다. 1998년 전체 실업률은 7.0%, 최고 8.7%까지 상승하며 당시 실업자 수가 130만 명을 넘어섰다. 

온 사회가 명확한 위기 상황임을 인지했고, 정부는 긴급 재정을 투입해 공공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구제책을 시행했다. 전 세대가 고용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던 시기였다.

당시 신규 진입에 실패한 세대는 이후에도 고용 불안정에 노출되며 장기적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원인이 명확했던 급성 질환이었던 셈이다.

반면 현재의 고용 위기는 양상이 다르다. 반도체 등 일부 수출 업종의 실적을 제외하면, 내수와 제조업 전반의 실적 여력은 약화된 상태다.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은 과거처럼 기존 인력을 대규모 감원하는 위험한 선택 대신, 신규 채용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기업의 정기 공채 폐지도 신입 진입 문턱을 높였다. 2019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 이후 LG, SK, 롯데 등 주요 그룹이 순차적으로 수시 채용을 도입했다. 현재 4대 그룹 중 정기 공채를 유지하는 곳은 삼성이 유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기업 중 채용 방식을 '경력직 위주 수시 채용'으로 응답한 비율이 70%를 상회한다. 기업들이 훈련 비용이 들지 않고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직 위주로 채용 방식을 바꾸면서, 기존 인력의 고용은 유지되는 반면 신입 진입은 차단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수도권 대학 졸업생 A(26)씨는 "서류 전형부터 '관련 분야 실무 경험'을 요구하는데, 신입을 뽑지 않으니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서류조차 낼 곳이 없어 차라리 지원을 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중고신입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B(28)씨 역시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서류 탈락을 거듭하며 구직을 포기하고 있다 보니, 합격 소식을 들었어도 친구들에게 취업했다고 자랑하기 미안할 정도"라고 취업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로 인해 표면 실업률은 2%대로 낮게 유지되지만 청년 고용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신입 채용 문이 닫히면서 구직 활동을 중단하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15~29세 '쉬었음' 인구는 40만 명에 육박한다. 

전체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이 차지하는 비중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들은 통계상 구직 단념자나 실업자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다. 전체 실업률 2%라는 지표 뒤에 구직을 포기한 인구가 제외되어 있는 구조적 착시가 나타나는 이유다.

◆ 회복 방식의 차이… 구조 수술 필요한 현재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 부도로 발생한 위기였기에, 기업이 정상화되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채용도 재개될 수 있었다. 희생은 컸지만 경기 회복과 함께 고용 문이 다시 열리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채용 난항은 경영 환경 변화에 따라 기업들이 선택한 채용 전략의 결과다. 경기가 일부 회복되더라도 기업이 신입 채용을 대폭 늘리지 않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신입을 뽑아 2~3년 교육시키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며 "한 번 채용하면 해고가 어려운 노동 구조 특성상 검증된 경력직을 수시로 채용하는 것이 현명한 생존 전략"이라고 전했다.

1997년이 외인성 충격에 따른 일시적 단절이었다면, 지금은 채용 시장의 체질 자체가 변화한 결과다. 1997년보다 현재의 청년 고용 상황이 더 단단히 닫혀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가 답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시장의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통해 자율성이 회복됐지만, 지금은 과도한 노동 규제와 정규직 과보호가 기업의 손발을 묶어 신입 진입을 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해서 기업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채용을 강요해선 안 된다"며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규제를 풀어 민간이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게 하는 것만이 청년 고용 절벽을 푸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