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정년·연공서열·해고 규제 삼중고… 기업엔 신입이 '고정비 리스크'
초급 업무 삼킨 AI 바람까지… "단기 재정 일자리 대신 노동시장 유연화해야"
통계표에 찍힌 실업률 2%대의 평온함 뒤에 대한민국 청년 고용 시장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내수 침체와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신규 채용 문은 굳게 닫혔고, 구직 활동을 포기한 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쉬었음' 청년은 4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미디어펜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채용 한파와 현재의 고용 현상을 비교·분석해, 체감온도가 차가워진 구조적 원인과 민간 채용 동력을 살릴 해법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올해 청년 고용 시장의 핵심은 지표상 실업률이 아닌 '신규 인력의 진입 차단'이다. 기업들이 신입 채용 문을 닫아거는 배경을 두고 산업계에서는 단순한 경기 침체 이상의 구조적 원인을 지목한다.

   
▲ 올해 청년 고용 시장의 핵심은 지표상 실업률이 아닌 '신규 인력의 진입 차단'이다. 기업들이 신입 채용 문을 닫아거는 배경을 두고 산업계에서는 단순한 경기 침체 이상의 구조적 원인을 지목한다. 사진은 서울시 전경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3일 재계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 도입 등 노동 시장의 강제적 구조조정을 거치며 위기 이후 다시 채용을 재개할 여력이 생겼지만 2026년 현재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한국 특유의 경직된 노동 법제 탓에 채용에 따른 장기적 부담은 한계에 달한 반면, 생성형 AI 확산으로 신입이 맡던 기초 업무마저 빠르게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용과 리스크는 커진 반면 신규 인력을 들여 훈련시킬 실질적 유인은 사라지면서, 청년을 향한 기업의 채용 문호가 닫힐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해고 불가능·호봉제' 노동 경직성이 낳은 진입 장벽

2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치명적인 리스크'로 인식하게 된 근본 원인은 최근 심화하는 노동 시장의 경직성에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고용 충격의 중심에는 1998년 노사정 합의를 통해 도입된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제'가 있었다.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들은 대규모 감원을 통해 인건비 부담을 털어냈고, 이후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자 2000년대 초반 벤처 붐과 함께 대규모 신입 채용을 재개할 수 있었다.

반면 2026년 현재의 노동 시장은 전면적인 인력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법원 판례 역시 통상해고나 정리해고 요건을 극도로 엄격하게 해석한다. 

여기에 2016년부터 의무화된 '법정 60세 정년'과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가 자동으로 오르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호봉제)가 결합하면서 기업의 장기 고정비 부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신입 사원 1명을 정규직으로 선발하는 것은 단순한 월급 지급을 넘어, 향후 30년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고정비를 확정 짓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된다. 직무 적합성이 떨어지거나 경기 변동으로 해당 사업부가 축소되더라도 인력 재배치나 감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이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에서 한국의 종합 순위는 상위권에 속하지만, 세부 지표인 '노동시장 자유도(Labor Freedom)'는 100점 만점에 50점대 안팎에 머물며 전 세계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엄격한 해고 요건과 경직된 법제 탓에 노동 유연성이 글로벌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의미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전면적 구조조정이 법적·사회적으로 원천 봉쇄된 상황에서, 기업들은 '기존 인력의 과보호'를 유지하는 대가로 '신규 채용 억제'라는 방어책을 굳힐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 신입의 업무 사다리 걷어찬 AI… 사라진 '도제식 육성'

제도적 장벽 위에 생성형 AI를 필두로 한 기술 변화 역시 신입 채용 감소 현상에 직격탄을 날렸다. 1997년 당시와 비교해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인재 육성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시절만 하더라도 기업들은 대규모 공채로 신입을 선발해 복사, 서류 편철, 기초 데이터 취합 등 잔업부터 맡기며 2~3년간 조직에 적응시키는 '도제식 육성(OJT)'을 당연하게 여겼다. 신입은 생산성이 낮아도 기업의 미래를 떠받칠 씨앗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현재 산업 현장에서는 이 같은 초급 직무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시장 데이터 수집, 기초 통계 가공, 회의록 작성 및 기획서 초안 작성 등 신입이 업무를 익히는 필수 관문이었던 영역을 고도화된 생성형 AI가 수 초 만에 처리하고 있어서다.

자연스럽게 기업 입장에서는 수년간 교육 비용을 들여가며 초급 업무를 맡길 신입을 대규모로 채용할 유인이 증발했다. 신입이 현장에 진입해 경험을 쌓고 중급 인력으로 성장하는 '성장의 사다리' 자체가 끊어진 것이다.

실제로 무늬만 '신입' 공고일 뿐, 실질적으로는 1~2년의 유사 실무 경험을 요구하며 타 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온 '중고신입'을 우선 선발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기초 실무를 경험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20대 대졸자들이 취업 시장에서 고립되며 비경제활동인구로 밀려나는 결정적 이유다.

◆ "세금 일자리 아닌 구조 개혁"… 시장 기능 회복이 해법

전문가들은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기업에 신규 채용을 압박하거나, 나랏돈을 투입해 단기 공공 일자리를 양산하는 방식으로는 청년 고용의 근본적 돌파구를 열 수 없다고 경고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공공근로 등 긴급 재정 지원이 일시적 안전망 역할을 했지만, 현재의 청년 고용 가뭄은 재정이 아닌 '노동 시장 왜곡'에서 기인한 만성 질환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과 고용 유연성이 마비된 상태에서의 재정 투입은 통계 착시만 키우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청년 고용 문제를 재정 지원이나 기업에 대한 채용 압박으로 풀려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라며 "기업이 청년 인재를 뽑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엄격한 고용 규제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탓에 채용 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장기 고정비로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교수는 "근속연수가 차면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걷어내고 일의 가치와 생산성에 따라 보상하는 '직무급제'를 정착시키는 한편, 정규직 과보호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면서 "기업이 신규 채용에 따른 부담을 덜고 유연하게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노동 개혁이 선행돼야만 청년들에게 새로운 진입로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청년 고용 가뭄을 해소할 유일한 출구는 노동 시장의 체질 개선에 있다는 의미다. 1997년의 위기가 부도와 감원에 대응하는 일시적 충격이었다면, 2026년의 고용 난항은 노동 규제 완화와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 없이는 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