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종목 레버리지 사태 이후 '마케팅' 위축…"가이드라인 필요"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자금 흐름의 축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판'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시장금리 변동성 확대와 증시 관망세 속에 점점 증시에서 돈이 이탈하는 '역(逆)머니무브'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증권업계에 대해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등 한층 깐깐해진 금융상품 광고·마케팅 규제를 가하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으로 한차례 거센 홍역을 겪은 증권·자산운용업계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자금 흐름의 축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판'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계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스탠스가 변화하면서 업계 전반의 분위기에도 긴장감이 감지된다. 근본적으로 일련의 상황은 '자금이동'과 관계가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8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총 1005조2319억원 수준으로 현재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월 말(984조9399억원)과 비교했을 때 한 달 사이 2% 넘게 증가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가운데 5대 은행 정기예금은 5월 이후 넉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오며 자금 유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증권사 쪽으로 넘어왔던 자금이 다시 은행권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역 머니무브'다. 

실제 투자자들의 주식 대기자금 성격을 띠는 투자자예탁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금융투자협회 집계 결과 지난달 말 투자자예탁금은 99조7044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4조4309억 원 감소해 10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해 연 3.00%로 끌어올린 데다, 국내 증시가 조정 국면을 맞이하면서 투자자들이 '원금 보장과 확정 금리'를 좇아 은행권 수신 상품으로 발길을 돌린 탓이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현재 연 3.20~3.30%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증권사들의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자본시장 유동성이 메마르고 브로커리지 수익이 급감하는 위기 국면이지만, 금융당국의 규제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표적인 '뇌관'으로 작용한 것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사태였다. 이 상품을 둘러싼 시장의 사건들이 규제 압박의 결정적 분기점이 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말 해당 상품 상장 당시 기본예탁금 1000만원과 2시간 온라인 사전 교육 이수 등의 진입장벽을 뒀으나, 단기 변동성 확대와 시장 과열 양상이 나타나자 불과 두 달 만인 7월 말 투자자 기본예탁금을 현금 3000만원으로 3배 상향하고 대용증권 인정을 배제하는 등 사후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유동성공급자(LP)의 적정 괴리율 관리 기준도 3%에서 2%로 조이고 신규 단일종목 상품 출시도 잠정 중단시켰다.  

이 여파로 출시 초기 일평균 11조6787억원에 달하던 관련상품 거래대금은 8월 들어 1조59억원 수준으로 10분의 1 토막이 났다. 개인투자자 역시 규제 시행 이후 한 달간 1조773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시장이 급랭했다. 증권업계와 자산운용업계 입장에서는 고난도 파생결합상품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사실상 원천 봉쇄된 셈이다.  

여기에 금융소비자보호법에 기반한 마케팅 규제 수위까지 한층 높아지면서 현장 영업은 사실상 '개점휴업' 위기에 직면했다. 금소법상 6대 판매원칙 중 허위·과장광고 및 부당권유행위 금지 규정이 강화되면서 증권사들은 비대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유튜브 채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프로모션 문구 하나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 

은행 정기예금과의 금리 격차를 겨냥해 발행어음, 국채,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 등 안전성 지향 대체상품을 내세우려 해도 '최고 수익률 표기 제한' '원금 손실 가능성 문구 필수 배치' '혜택 지급 관련 과도한 경제적 이익 제공 제한' 등 엄격한 준법 감시 기준이 적용된다. 과거처럼 높은 쿠폰 금리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신규 계좌 개설 축하금을 지급하는 식의 공격적 유치 마케팅은 원천 차단된 상태다.

마케팅 부서와 준법감시 부서 간의 승인 '병목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시장 트렌드에 발맞춘 짧은 숏폼 영상이나 알고리즘 기반 맞춤형 알림 푸시(Push) 메시지마저 개별 투자권유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사전 심의에만 수주일이 소요되는 실정이다. 

시의성이 생명인 금융 리테일 시장에서 타이밍 늦은 마케팅이 반복되다 보니 투자 전환율은 과거 대비 급락하고 있다. 실제로 업계 한 관계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사태 이후 금융당국의 시선이 더욱 매서워져 준법 리스크를 피하려다 보니 마케팅 문구가 밋밋해지고, 결국 자금 유출을 방어할 실효성 있는 무기가 전무하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는 단순 수익률 강조나 고위험 파생상품에 기댄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자산관리(WM)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현행 규제가 리테일 영업의 숨통을 과도하게 조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나 퇴직연금(IRP) 등 세제 혜택 계좌를 통한 장기 자산관리 유치조차 설명의무와 비대면 권유 가이드라인에 묶여 대고객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 보호라는 원칙은 지키면서도 건전한 자산 배분을 돕는 정상적인 마케팅까지 과도하게 위축되지는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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