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권리'로 변질된 '성과급의 역설'..."반도체 초격차 흔든다"
입력 2026-09-07 11:18:10 | 수정 2026-09-07 11:30:19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호황엔 독식, 불황엔 반발… 왜곡된 'N% 성과급'의 덫
정부 가이드라인에도 '합의 유지'… 커지는 법적 불확실성
정부 가이드라인에도 '합의 유지'… 커지는 법적 불확실성
[미디어펜=조우현 기자]반도체 산업이 호황기를 맞이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내부 진통을 겪었거나 여전히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생산성 향상과 혁신 동기 부여를 위해 도입된 성과급 체계가 오히려 극단적인 분배 요구와 노사 대립을 부추기며, 기업의 유동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부문 중심의 '동행노조'는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15초 분량의 광고를 송출했다. 광고에는 인공지능 전환(AX) 국면에서의 인력 효율화 반대와 자사주 지급 확대,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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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의 완제품 사업을 맡고 있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중심의 삼성전자 노동조합 동행(이하 동행노조)이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광고를 게시했다. 이날 0시부터 매시 35분마다 송출되는 15초 길이의 영상은 "GREAT PRODUCTS BEGIN WITH PEOPLE. 위대한 제품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WE ARE STILL HERE. 우리도 아직 여기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진=삼성전자 동행노조 제공 | ||
◆ 원정 광고부터 잠정합의안 부결까지… 반도체 호황이 부른 분배 파열음
호황을 맞은 반도체(DS) 부문과의 성과급 격차 및 구조조정 우려를 글로벌 소비자가 밀집한 미국 심장부에서 공론화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내부 임금 갈등을 해외 마케팅 격전지에 노출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글로벌 브랜드 신인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군다나 타 부서가 반도체 호황에 편승해 동일한 수준의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기여도에 따른 차등 보상' 원칙을 흔들고 결과의 평등만을 앞세운다는 지적을 받는다.
고부가가치 AI 메모리로 대규모 흑자를 낸 반도체 부서와 완제품 부서 간의 보상 차이는 실적 연동 체계상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실적 격차를 외면한 채 "우리에게도 똑같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성과주의 보상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행태라는 목소리가 높다.
갈등은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SK하이닉스 생산직 노조 역시 고대역폭메모리(HBM) 선점에 따른 사상 최대 실적으로 수억 원대 성과급 지급안을 도출했음에도, '자사주 대신 현금'을 고집하며 1차 합의안이 부결된 바 있다. 이후 재협상을 통해 최종 타결되긴 했으나, 타결 직전까지 진통을 겪어야 했다.
◆ 성과급의 본질, '고정된 권리' 아닌 '리스크 분담 장치'
재계에서는 최근 반도체 업계 노조의 행보가 성과급(Incentive)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통상적인 근로기준법상 기본급이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확정적 임금이라면, 성과급은 회사의 초과 실적을 바탕으로 지급되는 '변동 보상이자 리스크 분담 기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과급은 구성원이 회사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고 그에 따른 결실을 공유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실적이 뛰어날 때는 풍요롭게 분배받더라도, 업황이 악화하거나 적자로 돌아설 때는 기업의 존립과 고용 안정을 위해 보상이 줄거나 아예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유연성을 전제로 성립한다.
특히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에서 기업이 거둔 호황기 이익은 전부 현금성 성과급으로 소진할 몫이 아니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첨단 선단 공정과 차세대 메모리 개발 등 천문학적 자본이 들어가는 반도체 산업일수록,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설비 도입과 차세대 R&D 투자에 최우선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호황기에 거둔 과실을 미래 재투자에 쏟지 않고 일회성 현금 인건비로 소진한 반도체 기업은 다음 다운사이클이 닥쳤을 때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다"며 "회사가 현금 대신 자사주를 제안하는 이유 역시 근로자가 단기 급여 수급자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장기 성장 결실을 함께 누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 정부,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파업 대상 아냐" 선 그었지만…
이러한 갈등이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분출되자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행정지침을 통해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N%)을 경영성과급으로 요구하는 행위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며 파업 등 노동쟁의 대상도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업 이익과 연동하는 성과급 요구는 경영진의 영업의 자유와 주주 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삼성전자 DS부문(10.5%)과 SK하이닉스(10%) 등 주요 기업들이 노사 합의를 통해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제도를 도입한 상태인 데다, 노동부 역시 "이미 체결된 기존 협약의 효력은 유지된다"고 밝혀 현장의 갈등 뇌관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도체 부문의 선례 탓에 삼성전자 DX노조처럼 "우리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 달라"는 타 사업부의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사법부가 경영성과급의 임금성을 점차 인정하는 판결 추세를 이어온 점, 쟁의 대상을 경영 판단 영역까지 넓히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이슈 등이 겹치며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침으로 무리한 파업 요구에 최소한의 제동은 걸렸지만, 이미 굳어진 현금 분배 관행과 사업부 간 형평성 갈등을 풀기엔 역부족"이라며 "반도체 같은 초격차 기술 산업이 단기 현금주의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성과급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제도적 기준 정립과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