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지연·관세 압박"…미국서 뛰는 삼성·SK, 정부 지원은 '제자리'
입력 2026-09-08 11:47:35 | 수정 2026-09-08 11:47:35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국 '현지 생산 연계 관세'로 리쇼어링 가속…보조금 조건 조율로 셈법 복잡
엔비디아·테슬라 잡으려 삼전·하이닉스 대미 투자 총력전…외교 없이 '각자도생'
엔비디아·테슬라 잡으려 삼전·하이닉스 대미 투자 총력전…외교 없이 '각자도생'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세계 각국이 자국 제조업 부흥과 산업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특히 미국은 현지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관세와 인센티브 정책을 정교하게 결합하며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보폭도 빨라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면밀한 보조금 집행 일정과 정책 변화 속에서, 정작 우리 정부의 통상 지원은 민간 기업의 투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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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집행과 정책 변화 속에서 우리 정부의 통상 지원은 민간 기업의 투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SK하이닉스가 곽노정 SK하이닉스 CEO(가운데)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에서 열린 AI 메모리 생산 기지 기공식에서 마이크 브런(Mike Braun) 인디애나 주지사(왼쪽), 미치 대니얼스(Mitch Daniels) 퍼듀대학교 총장(오른쪽) 등 참석자들과 함께 착공을 알리는 버튼을 누른 뒤 축하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사진=SK하이닉스 제공 | ||
◆ '현지 생산 연계' 미국 공급망 전략…빅테크 맞춤형 거점 속도
미국 정부의 반도체 통상 기조는 명확하다. 자국 내 생산시설을 유치해 첨단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고 핵심 기술 생태계를 미국 영토 내에 묶어두겠다는 전략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G20 혁신장관 회의 현장에서 CNBC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표적화되고 신중한 반도체 관세 정책이 나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지만, 생산하지 않는다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대가(관세)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정책"이라며, 미국 내 반도체 제조 투자와 연계한 표적 관세 검토 보도를 두고 "정확히 맞다"고 확인했다.
이에 맞춰 국내 기업들의 현지 생산기지 구축도 가시권에 들어섰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에서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40억 달러(약 5조5000억 원)가 투입되는 인디애나 팹은 2028년 10월 클린룸 완공 후 2029년 하반기부터 엔비디아 등에 공급할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을 본격화한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팹의 연말 가동을 앞두고 2나노 공정을 통해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프로세서 'AI5' 생산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칩스법(CHIPS Act)에 따른 직접 보조금 집행 과정에서 공정 마일스톤 달성과 재정 효율성을 면밀히 재검토하면서, 실제 자금 유입 시차가 발생해 초기 설비투자(CAPEX)를 집행하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미국 현지의 고물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팹 건설 비용이 치솟은 가운데, 당초 기대했던 수조 원대 보조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기업들이 초기 설비투자(CAPEX) 부담을 오롯이 떠안고 있는 탓이다. 현지 리스크를 덜어줄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협상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 냉정한 글로벌 룰 변화…기업 '각자도생' 한계
각국이 철저하게 자국 국익에 기반해 통상 제도를 설계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대응 부담은 민간의 몫으로 쏠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고위급·실무 협상을 통해 대만 등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요구하고, '민관 무역안보 대화'와 핫라인을 가동해 기업 애로를 수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현지 투자를 지렛대 삼아 관세 감면과 수출 허가 면제를 이끌어내 동맹을 굳히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관세 면제 확약이나 보조금 지연 해소 같은 실질적인 결과물 없이 "불리하지 않게 하겠다"는 식의 구상이나 내부 의견 청취에 머무는 대응은 현장의 위기감을 덜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만 정부가 TSMC의 미국 투자 과정을 전략적 외교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정부의 '실리 통상' 역할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송전망과 전력 인프라 병목으로 용인 클러스터조차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역 균형을 명분으로 호남 등 추가 투자 압박까지 얹으며 정책적 엇박자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냉정한 국제 현실에 맞춘 정부의 통상 패러다임 전환과 실행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이 자국 이익에 따라 관세와 보조금 정책을 유연하게 구사하듯, 우리 정부 역시 철저한 실리 관점에서 동맹국과의 협상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의 제조업 회귀 전략은 우리가 치밀하게 적응해야 할 환경"이라며 "정부는 관세 불확실성을 선제적으로 해소하는 동시에, 안방에서는 인프라 병목을 풀어 기업들이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러닝메이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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