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비스직·사무직 근로자’의 과로 산재 인정이 어려운 이유
입력 2026-09-09 14:08:58 | 수정 2026-09-09 14:08:58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김상명 노무사(노무법인 더보상)
[미디어펜=편집국] 일반적으로 사무직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떠올리면 ‘과로성 재해’를 생각하기 쉽다.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나 육체적 부담과 달리 사무직·관리직·영업직 근로자에게는 장시간 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중요한 업무상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사무직·관리직·영업직 근로자의 과로성 재해에 관한 상담과 사건을 자주 접한다. 과로성 재해는 주로 뇌경색·뇌출혈 등 뇌혈관 질병과 심근경색·급성심장사 등 심장 질병을 말하며, 이를 통상 ‘뇌심혈관계 질환’이라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제공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질병별 판정현황’에 따르면 과로성 재해의 인정률은 약 33% 수준이다. 근골격계질환 인정률 약 64%, 직업성 암 인정률 약 56%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왜 과로성 재해의 인정률은 이처럼 낮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그 원인 중 하나가 현재 과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변화된 노동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현행 고용노동부 고시는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를 판단하면서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 수면시간, 작업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52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52시간을 넘지 않더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경우 관련성이 증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실제 사건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근로시간’이라는 수치가 과로를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로(Overwork)’라는 말 자체를 생각하면 근로시간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로에는 단순히 오래 일했다는 의미의 ‘양적 과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업무의 강도와 책임, 감정노동, 인간관계, 성과압박 등에서 발생하는 ‘질적 과로’ 역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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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명 노무사(노무법인 더보상)./사진=더보상 제공 | ||
◆ 근로시간조차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는 근로자들
생산직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근로시간을 확인하기 쉽다. 정해진 사업장에서 출퇴근하고 교대시간이나 작업시간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출퇴근기록, 작업일지, 급여명세서 등을 통해 실제 근로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관리직·영업직·서비스직은 다르다. 출장지로 바로 출근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거래처를 방문한 뒤 곧바로 퇴근하기도 한다. 업무시간 이후 거래처나 고객과 전화·메신저를 주고받거나 집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관리자의 경우 퇴근한 이후에도 부하 직원의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에게 근로시간은 단순히 회사 출입기록에 찍힌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결과 실제로 상당한 업무를 수행했음에도 이를 객관적인 근로시간으로 환산하지 못해 과로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질적 과로의 문제는 더욱 어렵다. 사무직 근로자는 팀 단위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사·동료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관리직은 인사관리와 조직성과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영업·서비스직 근로자는 실적 압박뿐 아니라 고객을 직접 상대하면서 발생하는 감정노동과 민원,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근로시간처럼 ‘몇 시간’이라고 측정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주 45시간 동안 회사의 존폐와 관련된 고도의 의사결정을 반복해야 하는 관리자와 주 54시간 동안 비교적 정형화된 반복업무를 수행한 근로자 중 누가 더 큰 업무상 부담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지 않다. 업무시간만 본다면 당연히 54시간 근로자의 부담이 더 커 보인다. 그러나 의사결정의 책임, 성과압박, 인간관계, 고객과의 갈등, 고용불안 등을 함께 살펴본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현대 노동에서 과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어느 정도의 긴장과 책임을 가지고 수행했는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과거처럼 출근카드를 찍고, 정해진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방식만을 전제로 ‘과로’를 측정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 대법원도 ‘52시간’ 절대적 기준 안 봐... 근로시간 아닌 업무부담 측정해야
법원의 판단 역시 이러한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법원은 고용노동부 고시가 국민과 법원을 대외적으로 구속하는 법규명령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내부적인 업무처리지침 또는 법령 해석·적용기준에 해당하는 행정규칙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고시상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교대근무, 예측하기 어려운 근무일정, 육체적·정신적 부담 등 업무부담요인이 존재하는 경우 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례도 많다.
그렇다면 이제 행정 실무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은 객관적이고 편리하다. 45시간인지 55시간인지 숫자로 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을 판단하는 입장에서도 가장 명확한 지표다. 반대로 정신적 긴장과 책임, 고객과의 갈등, 성과압박과 같은 질적 과로는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의 과로성 재해 판단에서는 질적 과로를 어떻게 객관화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한다.
업무용 이메일과 메신저, 통화내역, 출장기록, 업무일정표, 실적자료, 인사평가, 조직개편 과정, 고객 민원, 업무상 책임의 변화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다면 기존의 단순한 출퇴근기록만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업무부담을 보다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의 노동환경은 이미 변했다. 그렇다면 과로를 판단하는 방식도 변해야 한다. 과로를 판단하는 진짜 질문은 ‘몇 시간을 일했는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시간 동안 근로자가 얼마나 큰 업무상 부담을 감당했는가’까지 물어야 한다. 근로시간은 과로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로의 전부는 아니다. 서비스직·사무직·관리직·영업직 근로자가 노동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지금, 산업재해보상제도 역시 ‘시간 중심의 과로 판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업무부담 중심의 과로 판단’으로 발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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