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현의 아틀라스] 삼류 정치판 된 삼성…선대회장 '무노조' 경고 돌아볼 때
입력 2026-09-18 11:21:39 | 수정 2026-09-18 11:21:39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10년 위기 딛고 반격 나선 삼성, 내부선 성과급·동료 혐오 진흙탕
기술 격차보다 무서운 '정치판 전락'…일하는 조직 문화 복원해야
기술 격차보다 무서운 '정치판 전락'…일하는 조직 문화 복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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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현 기자 | ||
"최대한 고통스럽고 끔찍한 최후를 당했으면."
막장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삼성전자 복수노조의 내부 소통방에서 오간 말들이다. 같은 회사 동료이자, 상대 노조 위원장을 겨낭한 증오가 외부에 공개되며 대한민국 1등 기업이 그야말로 삼류 정치판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여기에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의 비위와 일탈은 이 갈등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인 업체에 수억 원대 집회 물품 계약을 몰아주고, 억대 조합비 지출 과정에서 마일리지와 포인트를 사적으로 챙겼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돈만 좇는 노조 수장의 비리 의혹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사리사욕을 챙기는 모습의 앞뒤가 똑같아서 차라리 일관성 있다고 해야 할까. 여하간 도덕적 기준이랄 게 없는 사람이 조직을 장악했으니 노조 내부에서 저열한 행태가 터져 나오는 것 또한 이상할 게 없다. 다만 이 피로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고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무노조 경영'이 선견지명이었지 싶다. 두 회장이 수십 년간 무노조 원칙을 고수했던 본질은 노동 탄압이 아닌 '조직이 시끄러워져 이할 분위기를 망치는 번잡함'을 질색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병철 창업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을 통해 내부의 파멸과 대립이 기업을 파멸로 이끈다고 경고했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초단위 스피드 경쟁 속에서 사내 정치가 싹트는 것을 경계했다. 이들이 지금과 같은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던 무기는 명확했다. "딴생각 말고 일에만 몰입하자, 대신 대한민국 최고 대우를 보장하겠다"는 압도적 보상이었다.
그러나 그 균열이 깨지고야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997년 이건희 회장이 도입한 'EVA(경제적 부가가치)' 성과급제가 발목을 잡았다. EVA를 기준으로 초과이익을 산정해 연봉의 최대 50%를 안겨줬던 이 제도는 지난 20여년 간 삼성 직원들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2021년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라는 간단한 공식을 꺼내 들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세후 영업이익에서 복잡한 '자본비용'을 차감해 계산하는 산식의 EVA가 사측만 아는 '깜깜이'로 낙인찍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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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지난 5월 1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리는 2차 사후조정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노조의 불만은 그 흔한 노동의 가치나 권익 신장에 있지 않았다. 단지 "경쟁사보다 덜 받는다"는 원초적 박탈감에서 비롯됐다. 산식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밖으로 향했던 화살은 이내 "왜 너희 사업부가 우리 몫을 빼앗느냐"는 식의 내부 싸움과 동료 간 증오로 바뀌었다. 점입가경이다. 물론 이 지난한 갈등 배경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주도권을 놓쳤던 실책이 자리한다. AI 붐이 본격화된 시기, SK하이닉스가 앞서 치고 나가는 동안 삼성은 추격자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안에 대해 경영진의 안일함을 언급하기엔 억울한 측면이 크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 부터 경영권 승계 재판까지, 총수가 구치소를 오가고 매주 법정에 출석하는 사이 수조 원대 미래 기술 투자와 대형 M&A 결단은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건 지난 10년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손발을 묶어버린 사법리스크 속에서도, 위기를 수습하고 기술 격차를 좁히며 전열을 정비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1위를 탈환하기 위해 총수와 경영진, 현장 엔지니어들은 피땀 흘려 반격의 발판을 다져놓았고, 올해 상반기에만 146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삼성의 저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제는 노조가 문제다.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이고 다시 새 역사를 쓰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노조가 조직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여기에 파업이나 쟁의에 관대한 법체계까지 한몫 하며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선대의 직관은 틀리지 않았다. 일해야 할 조직이 정치에 빠지는 순간 기업은 무너진다. 지금 삼성을 위협하는 진짜 위기는 밖의 경쟁자가 아닌 노조의 자해극이다. "이러니 무노조가 맞았다"는 말이 왜 나오겠는가.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고, 땀 흘려 번 돈이 있어야 성과급도 있는 법이다. 일터를 정치판으로 전락시키며 돈만 탐하는 집단에 어떤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노조가 있어서 회사가 더 잘 돌아간다"는 소리가 나오게 할 자신이 없다면, 최소한 재 뿌리는 짓이라도 멈춰야 한다. 지금 노조가 해야 할 일은 동료를 향한 저주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 이유부터 증명하는 것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