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조금·패키징 공장, 중국 팹 등 당면한 지정학 리스크 선제 대응
‘제조 곽노정’에 ‘외교 원로’ 더한 분업…임원 250명 면담 통한 조직 진단도
[미디어펜=조우현 기자]SK그룹의 최고위 전문경영인 부회장 3인이 지주사 SK㈜를 떠나 핵심 주력사인 SK하이닉스로 자리를 옮겼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바탕으로 그룹의 최대 실적을 이끌고 있는 SK하이닉스에 그룹 내 대표적인 ‘글로벌·대관통’을 전진 배치한 것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대외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미국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 수령에 따른 후속 조건 이행과 인디애나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 안착, 중국 우시·다롄 팹(공장)의 장비 반입 유예 문제 등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이에 따라 이번 인사는 기술 사령탑인 곽노정 사장이 제조와 초격차 기술 경쟁력 확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거시적 외교 변수를 전담 방어하고, 동시에 내부 체질을 점검하려는 최태원 회장의 ‘외교 방파제’ 구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미·중 거점 총괄'과 '대관통' 전면 배치…지정학 변수 정면 돌파

서진우 중국 총괄 부회장, 유정준 미주 총괄 부회장, 이형희 부회장은 최근 지주사 SK㈜에서 SK하이닉스로 보임했다. 그룹 전문경영인 부회장단 4명 중 장동현 SK에코플랜트 부회장을 제외한 3명이 SK하이닉스로 집결한 셈이다.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 엔지니어가 아닌 ‘글로벌 거점 사령탑’과 ‘대외협력(CR) 전문가’의 결집이라는 점이다. 서진우·유정준 부회장은 각각 중국과 북미 사업을 주도해 왔으며, 이형희 부회장은 그룹의 대외 소통과 정책 조율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한 제조 영역을 넘어 국가 간 통상과 안보가 얽혀있는 상황이다. 미국 상무부의 보조금 및 인센티브 요건 충족, 현지 공장 착공 등 대미 협상력 강화가 필수적인 시점이다. 동시에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속에서 주력 생산 기지인 중국 공장의 운영 지속성을 담보해야 하는 현실적 과제도 안고 있다.

그룹 내에서 미·중 네트워크와 대정부 대관 업무를 오랫동안 총괄해 온 최고위 전략가들을 하이닉스 전면에 직접 세운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를 기술 개발 못지않은 핵심 경영 과제로 격상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기술과 외교 분리…완성된 분업 체제

또 이번 배치는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이끄는 현장 체제와 부회장단의 전문성이 맞물린 기능적 분업 구도라는 진단도 나온다. 곽 사장이 AI 메모리 기술 경쟁력과 차세대 칩 개발, 수율 안정화에 전념하는 동안, 부회장단은 외곽에서 글로벌 정책 조율, 대정부 협력, 장기 거시 전략 등 비즈니스 외교를 전담하는 ‘투트랙(Two-Track)’ 체제다.

이는 그룹의 자원을 실전에 전진 배치하는 ‘SK식 리밸런싱’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그룹의 양대 축 가운데 배터리(SK온) 부문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통해 ‘재무적 체력 보강’에 집중하고 있다면, 확실한 현금 창출원인 반도체에는 대외 리스크를 차단할 ‘외교적 방패’를 덧댄 셈이다.

내부적으로는 조직 체질 점검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부회장단은 보임과 동시에 SK하이닉스 사장단을 포함한 임원 250여 명 전원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에 착수했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지만, 재계에서는 연말 정기인사를 앞둔 사전 조직 진단 성격이 짙다고 보고 있다. 지주사 부회장단이라는 외부의 객관적 시선으로 비효율을 걸러내고,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하반기 조직 정비와 중장기 사업 과제를 확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는 미·중 갈등 같은 외생 변수를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라며 "곽노정 사장의 기술 리더십에 부회장단의 외교·대관 역량이 더해지면서 SK하이닉스는 기술 혁신과 대외 리스크 방어라는 두 축을 모두 단단히 다지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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