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은닉 정황이 불거지며 30년 만에 재조명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나타난 비자금 300억 원의 김옥숙 메모가 불씨가 돼, 검찰은 지난 8월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은닉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특히 김옥숙 여사 자택과 아들 노재헌 주중대사가 이사장을 지낸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등도 최근 압수수색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30년 넘게 감춰져 있던 ‘안방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지 재계 내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지난 8월 서울 연희동 김 여사 자택와 함께 동아시아문화센터 및 과거 차명계좌 제공 의혹이 있는 전직 비서관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현재는 압수수색 자료 분석을 마치고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검찰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 첫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숨겨진 ‘안방 비자금’ 의혹은 이혼 소송 과정에서 노 관장 측이 ‘김옥숙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이는 실제 판결에 영향을 주며 증거로 인정되기도 했다. 이에 5·18 기념재단은 김 여사와 노 관장 등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검찰은 결국 지난 8월 압수수색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강제 수사 작업에 착수했다.

과거 1995년 10월 민주당 비자금 진상조사위원장이던 강창성 의원은 “김옥숙 여사의 친인척이 관리하는 자금은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며 김 여사 주변의 자금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또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여사가 재계 총수 부인이나 여성 기업인 등을 자주 만났다는 증언과 함께 자금이 차명계좌는 물론 부동산, 무기명 채권, 해외계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결국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은 지난 1997년 대법원이 추징금 2628억 원을 판결하며 마무리됐다. 장기간 미납됐던 추징금은 지난 2013년 최종 완납됐지만, 김 여사와 친인척이 별도로 관리하는 ‘안방 비자금’이 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김 여사 명의의 뭉칫돈이 잇따라 발견되기도 했다. 200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김 여사 명의의 시중은행 계좌 두 곳에서 총 11억9900만 원을 발견했다. 2002년과 2004년 현금으로 입금된 뒤 별다른 거래 없이 보관돼 있던 돈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가족들이 모은 돈”이라며 미납 추징금으로 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2007년 국세청 조사 과정에서 김 여사가 2000~2001년 타인 명의로 농협중앙회 보험상품에 210억 원을 납입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202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 여사는 해당 자금의 출처에 대해 기업들이 보관하다 넘겨준 자금 122억 원, 보좌진과 친인척 명의 자금 43억 원, 본인 계좌 자금 33억 원, 현금 11억 원 등을 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주목하는 부분은 김 여사가 2016년부터 수년에 걸쳐 아들 노 대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와 노태우센터 등에 거액을 출연한 경위다. 5·18 기념재단이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에 따르면 김 여사는 2016~2021년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총 147억 원을, 2022년 노태우센터에 5억 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비자금은 1200억 원 이상으로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면 범죄 행위의 전모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게 5.18 재단의 주장이다.

재계 내 한 관계자는 “김옥숙 여사의 300억 원 메모가 실제 판결에 증거로 인용되며 결정적 역할을 한 만큼, ‘안방 비자금’에 대한 의혹의 국민적 관심사”라며 “은닉재산은 공소시효 없이 반드시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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