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언론·평론가 시사회 통해 베네치아 은사자상 '가능한 사랑' 국내 첫선
"철 지난 해고 노동자 서사 너머 인간 밑바닥 훑었다" 언론·평단 호평 잇따라
이창동 감독 "해고·계급·자본의 복잡함 속 타인의 고통 탐하는 윤리적 질문"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164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창동 감독의 머릿속을 다 헤매고 다녀온 기분이다."
"이제까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많이 웃었다."
"철 지난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에서 이창동 감독은 무얼 더 빼먹을 수 있었을까 하고 봤는데, 그는 해고 노동자의 이데올로기나 분노를 넘어선 인간 마음 밑바닥부터 다 훑어냈다."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품에 안고 금의환향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마침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베일을 벗었다. 21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직후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는 이창동 감독 특유의 깊은 시선과 날카로운 화두를 향한 찬사가 터져 나왔다.

   
▲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가능한 사랑'이 국내 첫 선을 보였다. 사진 왼쪽부터 조인성, 조여정, 이창동 감독, 설경구가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은사자상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전도연은 미국 뉴욕에서의 연극 공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연결됐다. /사진=연합뉴스


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아내 미옥(전도연), 그리고 이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남편 상우(조인성) 등 서로 다른 환경과 계급에 놓인 두 부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그린다. 

이창동 감독이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지 24년 만에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트로피를 안겨준 이 작품은, 표면적인 해고 노동자 서사를 뛰어넘어 자본과 계급, 인간의 헛된 욕망과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창작자의 윤리까지 다층적인 결을 훑어내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시사회에 이어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창동 감독은 "해고 노동자 이야기 같기도 하고, 계급 간 갈등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윤리에 관한 문제 같기도 하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여러 복잡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수필 같은 제작 의도를 전했다.

   
▲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노동에 대한 시각이 변하면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영화"라고 말했다. /사진=미디어펜


이 감독은 10여 년 전 대기업의 대량 해고와 강제 진압 사건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아 작품 구상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연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없어 한 차례 접었으나, 시간이 흘러 노동에 대한 시각이 변하는 시점에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의 서사가 들어오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극 중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창작자의 윤리적 고민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 감독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거나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평생 해온 질문이며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며 "영화감독으로서 저 역시 자본의 도움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없기에 자본과 결혼하고 사는 삶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도 타인을 진실로 사랑하려는 마음이 과연 가능한가 질문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배우들 역시 계급과 자본이 인간을 뒤흔드는 방식을 깊이 고민했음을 털어놨다. 해고 노동자 호석 역의 설경구는 "자아가 깨진 상태에서 느껴지는 열등감과 복합적인 감정"을 연기 포인트로 짚었고, 연극 공연 일정으로 화상 참석한 전도연(미옥 역)은 "돈과 계급이 가치관을 무너뜨리더라도 자신의 가치와 가족을 지켜내려는 인물"로 캐릭터를 해석했다.

   
▲ 기자간담회에서 이창동 감독은 물론 배우들 모두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세계적으로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뿌듯해 했다. /사진=미디어펜


이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조인성(상우 역)과 조여정(예지 역)은 각각 친절함 이면에 무서운 욕망을 품은 인물과 남의 인생을 탐하는 창작자의 불안을 정교하게 그려내며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거장의 묵직한 화두와 최고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가 결합한 영화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선개봉해 스크린으로 관객을 먼저 만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