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2차 전기본 ‘에너지믹스’ 수립과정에 반영
“원전 건설 물량·설비계획 결정하는 자리는 아냐”
‘경제성·안전성·사용후핵연료’ 쟁점, 테이블에 올려
[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정부가 미래 전력수급에서 원자력발전의 역할을 국민에게 직접 묻는다. 이미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이 많은 것으로 밝혀진 것과는 별개로, 인공지능(AI)·반도체·전기차 등으로 급증하는 전력수요와 탄소중립, 전력공급의 경제성, 전력망 여건, 원전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원전의 역할을 논의해 보겠다는 것이다.

   
▲ 정부가 앞으로 약 3개월간 원전 공론화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새울3·4호기 전경./자료사진=한수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2일 국무회의에 ‘원전 공론화 추진계획’을 보고하고 앞으로 약 3개월간 원전 공론화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공론화 결과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 수립 과정에 반영될 예정이다.

이번 공론화는 반도체와 전기차 확대, AI 확산 등으로 향후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력원 구성을 국민과 함께 논의하겠다는 취지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이날 관련 브리핑에서 “AI의 확산과 첨단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전력은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도 빠르게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업의 전력공급 경제성과 전력계통 여건, 발전원별 특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번 공론화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원전을 둘러싼 논의를 ‘신규 원전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양자택일 방식에서 벗어나 원전을 미래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여러 발전원 가운데 하나로 놓고,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 종합적으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위한 원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장은 공론화 절차를 공정하게 이끌 수 있는 중립적인 인사를 위촉하고, 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11명 이내로 구성한다. 인문사회, 과학기술, 조사통계, 갈등관리, 에너지 분야 관련 기관과 단체의 추천을 받아 원전 이해관계자가 아닌 인사를 중심으로 꾸릴 계획이다.

또한 원전 분야 전문가는 별도의 전문위원회로 구성한다. 전문위원회는 원전과 전력수급 등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해 시민들이 관련 쟁점을 충분히 이해한 뒤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공론화위원회는 자문기구 성격으로 국민 의견을 수렴해 기후부에 권고안을 제출한다. 최종적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공론화 결과에 전력수급과 전력계통 등에 대한 전문적 검토를 종합해 마련한다.

시민참여단 3개월 숙의…공개토론·온라인 의견수렴 병행

공론화는 시민참여단을 통한 숙의토론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대표성 있는 국민으로 시민참여단을 구성한 뒤 원전과 전력수급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치며,숙의 전후 조사를 통해 시민참여단의 인식과 의견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시민참여단 중심의 숙의토론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개토론회와 온라인 국민 의견수렴을 병행해 시민참여단 외 국민과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폭넓게 듣는다. 전체 공론화 기간은 약 3개월로 계획됐으며, 정부는 12월께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은 10월께 확정하는 일정이 거론됐지만, 숙의민주주의 방식의 공론화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최소 3개월가량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일정이 조정됐다.

김 장관은 브리핑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공론화 절차를 거친 뒤 정부안을 확정하는 방향으로 일정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공론화가 신규 원전의 구체적인 건설 물량까지 결정하는 절차는 아니다.

김 장관은 공론화 과정에서 원전의 역할과 관련한 여러 의견을 수렴할 수 있지만 “원전을 몇 개를 하자”는 식의 세부적인 결정까지 공론화위원회가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설비계획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위원회와 기후부의 판단 등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부지가 확정됐거나 설계수명 연장을 신청한 원전에 대해서도 이번 공론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해당 사안들이 법적·행정적 절차 또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공식 추진 절차에 해당한다고 언급했다.

공론화 과정에서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 사용후핵연료 문제 등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김 장관은 원전의 발전단가와 관련해 과거 kWh당 약 65원 수준으로 추정됐던 비용이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등 여러 비용을 반영해 최근 재추계한 결과 약 79원으로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련 비용이 현재 원전 단가에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원전의 역할을 논의할 때 단순한 발전량이나 발전단가뿐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방사성폐기물 처분 등 원전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비용과 위험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부가 안전성 문제를 공론화 과정에 포함시키겠다는 점도 주목된다. 김 장관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존재한다”며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 듣거나 단순 찬반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번 공론화가 '합의 형성' 시험대

정부가 원전만 별도로 공론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그동안 원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누적돼 있다는 판단도 자리 잡고 있다.

김 장관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에서 원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했고, 이후 정부별로 원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 방향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원전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장기간 이어진 만큼 이번에는 보다 체계적인 숙의 과정을 거쳐 국민 의견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공론화 결과가 곧바로 특정 원전 건설 물량이나 설비계획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론화위원회가 국민 의견을 권고안 형태로 전달하면 정부는 이를 전력수급과 계통 여건 등 전문적 검토와 함께 종합해 최종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는 구조다.

기후부는 그동안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전력수요, 재생에너지 보급 전망, 석탄발전 조기폐지 방안 등에 대한 공개토론을 진행해 왔다.

이번 원전 공론화 결과까지 종합해 연말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번 계획은 2026년부터 2040년까지의 중장기 전력수급 방향을 다룬다는 점에서 원전 공론화의 결과가 향후 국가 에너지믹스 논의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될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원전의 역할을 둘러싼 국민의 판단을 숙의 과정에 담기로 한 만큼 앞으로 3개월간의 논의에서는 원전의 안정적인 전력공급 역할뿐 아니라 탄소중립, 경제성, 안전성, 사용후핵연료, 전력망 등 서로 다른 가치가 어떻게 조정될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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