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모욕’ 논란 ‘암살자(들)’, 왜곡 공방이 독일까? 약일까?
입력 2026-09-29 07:53:43 | 수정 2026-09-29 07:56:23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현대사 다룬 영화들의 진영 논리, 대체로 화제성 업고 흥행에는 강해
'박정희 왜곡' 관련 이전 작 '남산의 부장들'도 500만 육박하며 관심
'박정희 왜곡' 관련 이전 작 '남산의 부장들'도 500만 육박하며 관심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쟁이 정치권으로 번졌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당시 수사 당국의 공식 결론과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다.
개봉 직후부터 이어진 논란은 추석 연휴 흥행과 맞물려 정치권의 공방으로 확대됐고, 영화계 안팎에서는 과거 현대사 영화에서 반복됐던 ‘역사왜곡 논쟁=흥행 변수’라는 공식이 다시 작동할지 주목하고 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재일교포 문세광이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으나 총탄이 빗나가 육 여사가 피격됐다고 결론 내렸고, 문세광은 같은 해 사형됐다. 이것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수사·재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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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 후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사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사진=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 ||
영화는 여기에서 출발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건 당일 울린 총성의 숫자와 당시 공식 발표 사이의 차이, 경호 과정에서 발생한 총탄 문제, 이후 수사를 둘러싼 의혹 등을 극적 장치로 끌어들인다. 특히 영화 속에서 중앙정보부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인물들을 방해하는 장면 등이 등장하면서, 박정희 정권 또는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역사적 기록과 자료를 토대로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한 극영화라고 설명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다. 국민의힘은 영화가 사실상 ‘박정희 배후설’ 또는 ‘자작극’ 가능성을 암시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영화 내용을 비판하면서 200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해 사과한 사실까지 거론했다. 주진우·송언석·구자근·강명구 등 국민의힘 의원들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일부 의원들은 사자 명예훼손 문제까지 제기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도 가세했다. 재단은 문세광이 조총련에 포섭돼 범행을 실행한 과정이 수사와 재판 기록에 남아 있다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육 여사 암살을 기획했다는 식의 주장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제작사에 공식 사과와 영화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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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살자(들)'에 대해 박정희기념재단이나 국민의힘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며 상영 중지를 요구하고 나섰다./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 ||
반면 제작진은 정반대 입장이다. ‘암살자(들)’은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하되 공개된 기록과 자료, 서적, 다큐멘터리 등을 폭넓게 조사하고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며, 영화 속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한 적도,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다양한 해석과 비판은 존중하지만 특정 정치적 목적을 갖고 만든 영화는 아니라며 ‘창작의 산물’로 봐달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영화의 구체적인 역사 해석에 대한 판단보다는 국민의힘의 대응을 비판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을 향해 ‘공작 DNA’를 언급하며 맞받았고, 이에 따라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은 어느새 박정희 시대와 진영 간 역사 인식의 충돌로 확대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논쟁이 ‘암살자(들)’에서 처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정희 시대를 다룬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그때 그 사람들’이다. 2005년 개봉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인물의 묘사를 놓고 유족 측이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인격권 침해 우려가 일부 있다고 보면서도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블랙코미디를 표방한 상업영화라는 점 등을 들어 상영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실제 기록영상이 영화의 허구적 장면과 혼동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부 삭제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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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이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논란 속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남산의 부장들'./사진=쇼박스 제공 | ||
2020년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도 비슷한 논쟁을 불러왔다. 영화는 10·26 사건을 중심으로 박정희 정권 말기의 권력투쟁을 다루면서 김재규를 모티브로 한 김규평을 통해 박정희를 바라본다. 특히 박정희가 혁명 동지들과 결별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 그리고 김재규가 결국 그 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극적으로 그려지면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제작진은 실존 인물에게 가명을 부여해 영화적 재구성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남산의 부장들’은 최종 475만 여 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논쟁이 영화의 흥행을 차단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현대사 영화에서 더 눈에 띄는 사례도 있다. ‘변호인’은 1137만 명, ‘택시운전사’는 1218만 명의 관객을 기록했고, 12·12 군사쿠데타를 다룬 ‘서울의 봄’ 역시 2023년 천만 관객 영화가 됐다. 이들 작품 역시 개봉 과정에서 특정한 역사 인식이나 인물 묘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적지 않았다.
반대 방향의 사례도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은 역사왜곡 논쟁 속에서도 개봉 약 2주 만에 38만 명, 총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정치권과 보수 성향 관객의 관람 인증 등이 화제가 되면서 논쟁 자체가 작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당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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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며 진보진영에서 반발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기적에 가까운 110만 명의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사진=다큐스토리 프로덕션 제공 | ||
결국 역사왜곡 논쟁이 영화에 미치는 효과는 단순히 ‘악재’ 또는 ‘호재’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적어도 세 가지 경로가 동시에 존재한다.
첫째는 관심의 증폭이다. 평소 현대사에 관심이 없던 관객에게도 정치권의 공방은 작품의 존재를 알리는 강력한 뉴스가 된다. ‘무슨 영화이기에 정치권이 싸우는가’라는 호기심이 극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관객층의 결집이다. 역사적 해석에 공감하는 관객에게 영화 관람은 단순한 문화 소비를 넘어 자신의 역사 인식과 연결된 행위가 될 수 있다. ‘건국전쟁’ 사례에서 나타난 단체 관람과 관람 인증 등이 대표적이다.
셋째는 반작용이다. 반대로 논란의 대상이 된 영화에 대한 불매, 별점 테러, 상영 중단 요구 등이 실제 관람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 ‘암살자(들)’ 역시 현재 온라인에서 관객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는 점에서 논쟁이 단순한 홍보 효과로만 작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개봉 이후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8.4점인 반면 네티즌 평점은 2.4점으로 크게 갈렸다.
현재까지 나타난 숫자는 오히려 논쟁과 흥행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암살자(들)’은 지난 23일 개봉한 뒤 추석 연휴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고, 28일 기준 누적 관객은 156만 명 안팎까지 증가했다. 논란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으로 확산된 시점과 영화가 상당수 관객을 확보한 시점이 겹친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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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쟁으로 흥행에 해가 될 지, 오히려 득이 될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사진=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 ||
다만 과거 사례를 현재 흥행의 결과로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남산의 부장들’과 ‘암살자(들)’은 모두 박정희 시대의 사건을 다루지만, 전자는 10·26이라는 이미 역사적으로 확립된 사건을 권력 내부의 심리극으로 재구성했고 후자는 육영수 여사 피격이라는 사건 자체의 진상을 둘러싼 의혹을 핵심적인 서사 장치로 삼았다. 논란의 성격이 같지 않다.
따라서 ‘암살자(들)’의 향후 흥행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 왜곡 논란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논쟁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 머무느냐, 아니면 영화에 대한 정치적 거부감과 불매로 이어지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처럼 정치권 공방이 계속될 경우 작품의 인지도는 높아질 수 있지만, 동시에 관객을 정치적 진영별로 갈라놓는 효과도 커질 수 있다.
역설적으로 현대사 영화에서 ‘역사 왜곡’과 ‘역사적 재해석’의 경계가 논쟁의 대상이 되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단순한 영화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관객은 스크린 속 사건 뿐 아니라 ‘누가 이 역사를 말하고 있는가’를 함께 보게 된다. ‘국제시장’, ‘변호인’,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남산의 부장들’ 등이 보여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암살자(들)’ 역시 같은 길에 들어섰다. 영화가 제기한 의혹의 역사적 타당성과 별개로, 정치권의 격렬한 공방 자체가 작품을 하나의 사회적 사건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흥행을 둘러싼 진짜 변수는 이제 이 논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 또 관객들이 그 논쟁을 ‘관람해야 할 이유’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관람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