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두뇌전쟁④]현대차, 인도 대학과 R&D…미래 프로젝트 가동
입력 2026-10-06 10:00:11 | 수정 2026-10-06 10:00:30
김태균 편집국장 | ksgit@mediapen.com
IIT 델리·봄베이·마드라스 등 7개 대학과 미래차 공동연구
배터리·BMS부터 AI 기반 V2G까지…39개 프로젝트 진행
자체 연구소 넘어 현지 대학·교수까지 글로벌 R&D망으로
배터리·BMS부터 AI 기반 V2G까지…39개 프로젝트 진행
자체 연구소 넘어 현지 대학·교수까지 글로벌 R&D망으로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면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연구개발(R&D)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해외 연구소가 한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현지 시장에 맞게 바꾸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해외 연구진이 글로벌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도와 베트남, LG전자는 베트남, 현대자동차그룹은 인도에서 현지 연구인력과 대학을 글로벌 R&D망에 편입시키고 있다. 미디어펜은 ‘글로벌 두뇌전쟁’을 통해 한국 기업의 해외 R&D 전략과 세계 기술인재 확보 경쟁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태균 편집국장]현대자동차그룹의 인도 연구개발(R&D) 전략에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현지 연구소의 연구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과 교수, 연구자들을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연구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인도공과대학(IIT) 델리·봄베이·마드라스에 이어 올해 IIT 칸푸르와 IIT 하이데라바드, 비스베스바라야 국립공과대학(VNIT) 나그푸르, 테즈푸르대학교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했다. 인도 전역 7개 대학을 연결하는 산학협력 R&D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이 네트워크에서 진행되는 공동연구만 39개에 달한다.
배터리 셀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에너지밀도, 안전성, 내구성, 진단기술은 물론 AI를 활용한 차량-전력망 연계(V2G) 플랫폼까지 연구 대상이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R&D가 해외에 자체 연구소를 만드는 단계를 넘어 해외 대학과 교수들의 연구역량까지 연결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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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그룹과 인도 대학들은 단순히 인도에서 잘 팔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연구를 넘어 자동차·배터리·AI·전력망을 연결하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까지 연구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AI 생성 이미지 | ||
3개 대학에서 7개로…현대차가 만든 '인도 R&D 연합군'
출발점은 2024년 12월이다. 현대차그룹은 IIT 델리·봄베이·마드라스와 배터리·전동화 분야 공동연구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약 700만달러를 투자하는 계획도 마련했다.
핵심에는 IIT 델리에 설치된 '현대 미래 모빌리티 기술 연구센터(Hyundai Center of Excellence for future mobility technology·Hyundai CoE)'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4월 이 연구센터를 공식 개소하고 본격적인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초기 공동연구 프로젝트는 9개였다. 배터리 셀과 시스템, 시험기술을 비롯해 BMS, 에너지밀도 향상, 안전성, 내구성, 진단기술 등 전기차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분야가 포함됐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 IIT 칸푸르·하이데라바드, VNIT 나그푸르, 테즈푸르대와 추가 협약을 체결했다. 3개 대학이던 협력망이 7개 대학으로 늘었고 공동연구 프로젝트도 39개로 확대됐다. 현대차그룹이 개별 대학과 하나씩 산학협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 전역의 대학을 하나의 R&D 네트워크로 묶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배터리부터 AI-V2G까지…인도 교수들이 미래차 기술 연구
현대차그룹이 인도 대학들과 연구하는 분야를 들여다보면 왜 이런 네트워크를 만드는지 보다 분명해진다. 가장 큰 축은 배터리다.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단순히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가 아니다. 주행거리와 충전시간, 차량가격, 안전성 등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높이면 같은 크기의 배터리로 더 멀리 갈 수 있고, 배터리 상태를 정밀하게 관리하면 수명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인도 연구진은 배터리 셀과 소재부터 BMS, 안전성, 내구성, 진단기술까지 전 영역을 공동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I 기반 V2G다.
V2G(Vehicle-to-Grid)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필요할 때 전력망으로 다시 보내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전기차가 이동수단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움직이는 보조배터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기차가 수백만대로 늘어나면 자동차에 연결된 배터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분산형 에너지저장장치가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인도 대학들은 AI를 이용해 차량과 전력망 사이의 전력 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술까지 연구하고 있다. 단순히 인도에서 잘 팔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연구를 넘어 자동차·배터리·AI·전력망을 연결하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까지 연구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연구주제도 교수들이 제안…'외부 두뇌'를 회사 안으로
현대차그룹의 인도 R&D 전략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연구방식이다. 기업이 연구과제를 정해 대학에 맡기는 기존 산학협력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부터 운영해온 '미래기술 연구 프로그램(Future Technology Research Program)'을 인도 대학 교수들에게도 개방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 교수가 직접 연구주제를 제안하면 현대차그룹이 이를 검토해 공동연구 과제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교수 등이 주요 대상이었지만 IIT 교수 등 외국인 연구자에게까지 문을 넓혔다. 회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술만 외부에 연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연구자가 가진 아이디어를 먼저 받아들여 미래 기술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R&D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해외에 연구소를 만들고 현지 연구원을 채용하는 것이 글로벌 R&D였다. 이제는 반드시 회사 직원일 필요도 없다. 대학 교수와 연구자, 학생까지 기업의 연구 네트워크에 연결하면 이들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자체 연구소 밖의 '외부 두뇌'까지 R&D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연구원과 인도 교수 연결…'두뇌 네트워크' 만든다
공동연구만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한국과 인도의 연구자가 직접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인도 연구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전기차 기술과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글로벌 온라인 콘퍼런스와 기술포럼 등을 통해 양국 전문가들의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이 2025년 연구센터를 출범시킬 당시부터 강조했던 것도 '사람의 연결'이었다. 배터리·전동화 분야의 한국 전문가와 인도 전문가가 기술을 교류하고 IIT 학생과 연구자가 장기적으로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인재로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도는 현대차에 단순한 해외 판매시장도, 생산기지만도 아니다. 14억명이 넘는 인구와 거대한 자동차시장뿐 아니라 IIT를 비롯한 세계적 공학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AI,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이 같은 기술인재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인도 대학을 장기적인 R&D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배경이다.
삼성·LG·현대차…해외 R&D 전략도 서로 달랐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그룹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삼성전자는 인도 벵갈루루의 대규모 자체 연구조직을 활용해 AI·통신·멀티미디어 등 글로벌 갤럭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현지 연구진이 베트남어 데이터와 AI 모델 개발에 참여하며 갤럭시 AI의 글로벌 언어 확장을 지원한다.
LG전자는 베트남에서 자동차 소프트웨어 R&D 조직을 키워 글로벌 완성차에 들어갈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디지털 클러스터 등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서 한단계 밖으로 나갔다. 자체 연구소뿐 아니라 인도 대학과 교수, 연구자까지 연구 네트워크에 연결하고 있다.
삼성이 '글로벌 연구소', LG가 '글로벌 소프트웨어 개발조직'을 확대한다면 현대차는 '글로벌 산학 R&D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세 기업이 향하는 곳은 같다. 필요한 기술과 인재를 한국 안에서만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AI와 전기차, SDV, 배터리처럼 기술의 융합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 기업, 한 국가의 연구인력만으로 모든 기술을 개발하기는 어려워진다. 결국 미래의 기업 경쟁력은 세계 어디에 뛰어난 연구자가 있는지를 찾아내고 이들을 얼마나 빠르게 하나의 연구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이 인도 7개 대학과 진행하는 39개의 연구 프로젝트는 이런 변화의 한 장면이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이 생산공장과 판매망 확보를 넘어 세계의 대학과 연구자까지 연결하는 '두뇌 네트워크'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디어펜=김태균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