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해석·상영 중단 요구 넘어 주거지 시위에 소속사 법적 조치도 강구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쟁이 주연배우 유해진을 향한 개인적 공격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시위로까지 번지면서 영화계를 넘어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품의 내용과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사실관계와 표현 방식,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 등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상영 중지를 요구하는 법적 절차 역시 정당한 권리 행사라면 법과 제도 안에서 판단받을 수 있다.

영화 비판 넘어 제일 약한 고리인 배우 개인 향한 공격의 시작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 영화에서 영화에 참여한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대중 연예인에 속한 배우는 영화를 공격하는 데 있어서 공격 가능한 가장 약한 고리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배우 입장에서 영화가 아닌 자신에 대한 공격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또 배우 개인에 대한 공격은 대중들에게 가장 휘발성 강한 자극적인 공격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화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4일부터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시위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유해진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매장 앞에서도 시위가 진행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배우 개인의 주거 공간은 물론 그가 광고하는 기업과 매장, 나아가 해당 공간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유해진의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는 5일 공식 입장을 내고 우려를 표했다.

소속사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유해진에 대한 비방과 허위사실이 무분별하게 유포·확산되고 있다며, 허위사실의 생성 및 유포와 악의적인 인신공격, 모욕 뿐 아니라 배우의 사생활 침해와 신변 위협, 명예훼손 등 일체의 행위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게시물과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있으며 배우의 권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영화계도 “비판과 개인 압박은 구분돼야”

같은 날 영화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제작과 연출, 촬영, 미술, 시나리오, 배급, 상영, 영화제, 교육, 노동 등 영화계 각 분야를 대표하는 19개 단체가 참여한 영화인연대는 '암살자(들)'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인연대는 작품을 둘러싼 논의가 작품의 내용과 해석을 넘어 작품에 참여했거나 의견을 밝힌 개인의 일상과 안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배우의 주거 공간을 대상으로 한 집회가 예고되고 영화 관련 활동과 행사가 취소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대한 비판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면 해석과 표현을 둘러싸고 다양한 문제 제기와 사회적 토론이 이뤄질 수 있고, 유족과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과 문제의식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작품에 대한 비판과 개인에 대한 압박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견은 비평과 토론,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밝힐 수 있지만 개인의 주거지나 신상정보 등 사생활의 영역으로 확대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생활 침해 우려있는 배우의 집 앞 시위, 과연 정당한가

이는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이다.

   
▲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역사 논쟁이 결국 주연 배우인 유해진 자택 앞 시위로 이어졌다.


유해진이 '암살자(들)'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작품 속 역사적 해석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것인지, 배우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거 공간까지 항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영화는 감독과 제작진, 배우, 투자·배급사 등 수많은 사람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창작물이다. 배우가 작품에 출연했다고 해서 작품의 모든 역사적 해석과 메시지에 동의했다거나 그것을 개인의 정치적·역사적 견해로 받아들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설령 배우의 발언이나 작품 참여에 대해 비판할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판의 방식과 한계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주거 공간에는 배우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 주민들이 존재한다. 영화 논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웃 주민들이 시위로 인한 소음이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과연 정당한 공론의 방식인지 의문이 남는다.

광고 매장 앞 시위도 마찬가지다. 기업이나 브랜드가 배우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는 이유로 항의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매장 직원과 점주, 해당 사실과 무관한 고객들에게까지 불편이나 압박이 전가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영화에 대한 논쟁이 불특정 다수의 일상 공간으로 확장되는 순간, 당초 제기했던 문제의식과는 다른 또 하나의 피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표현할 자유에도 지켜져야 하는 상식의 선

역사에 대한 기억과 분노는 존중받아야 한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다뤘는 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역시 필요하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설명과 해명을 요구하는 것 또한 시민의 권리다.

그러나 비판할 권리가 곧 타인의 일상을 침해할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온라인상에서의 비난과 허위사실 유포가 오프라인의 주거지 시위와 신변 위협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영화 논쟁의 범위를 넘어선다. 특정 배우를 넘어 그 배우의 광고주와 매장, 직원과 고객 등 불특정한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이 확산된다면 '정당한 문제 제기'라는 명분만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긴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법적 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고 작품을 둘러싼 찬반 논쟁 역시 더욱 거세질 수 있다. 그것은 민주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논쟁의 대상이 영화에서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설 필요가 있다. 작품을 비판하는 것과 배우를 공격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며,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사생활·안전을 침해하는 행위 역시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영화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자유는 어디까지이며, 타인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는 비판의 선은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

영화인연대가 밝힌 것처럼 작품에 대한 판단은 관객과 사회의 몫이다. 그렇다면 그 판단을 둘러싼 논쟁 역시 작품과 공적인 영역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논쟁이 사람을 향하는 순간, 그것은 영화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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