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서, 유해진 신변 보호 위해...진영 논리까지 개입돼 출구 보이지 않아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격화하는 가운데, 급기야 주연 배우를 향한 직접적인 신변 위협과 규탄 집회가 잇따르면서 경찰이 배우 유해진에 대한 신변 보호 조치에 나섰다. 문화예술 작품을 둘러싼 갈등이 극단적인 진영 대립과 개인에 대한 위해 협박으로 변질되면서 사태는 극단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6일 유해진의 소속사 측으로부터 신변 보호 및 안전 조치 요청을 접수하고 관련 절차를 가동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해진에게 즉시 긴급 신고용 스마트워치를 지급했으며, 112 시스템 등록과 함께 거주지 일대의 순찰을 대폭 강화했다. 다만 전담 경호 요원까지는 배치하지 않은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오후 소속사로부터 안전 조치 신청 접수를 받았다"라며 "범죄 피해를 입은 경우뿐만 아니라 향후 피해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절차에 따라 안전 조치를 실시한다"라고 설명했다.

   
▲ 영화 '암살자(들)' 사태가 유해진에 대한 신변 보호 요청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로 번지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이번 조치는 최근 유해진의 자택 인근에서 보수단체의 기습 집회가 개최되고, 온라인상에서 신변을 위협하는 성격의 게시물이 폭증한 데 따른 조치다. 신자유연대, 벨라도 등 보수 성향 단체들은 지난 4일부터 유해진의 자택이 위치한 서울 성북구 단독주택 일대에서 영화의 상영 중단과 제작진 및 출연진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규탄 집회를 이어왔다.

이들 단체의 실력 행사는 배우 개인의 주거지를 넘어 연관 기업과 제작사로까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버거킹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해진의 광고 모델 철회 및 해당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또한 호국연합방패단 등 또 다른 단체 역시 서울 강남구 소재의 '암살자(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사옥 앞에서 제작진과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경찰 수뇌부 역시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엄정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고범석 서울경찰청장은 정례 기자간담회를 통해 "집회와 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관리할 것"이라며 "배우에 대한 위해나 협박 행위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단호하게 조치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안전 위협이 판단될 경우 신변 보호 수준을 강화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영화적 해석이나 창작의 자유에 대한 비판을 넘어, 특정 배우와 기업을 향한 집단적 위협으로 과열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영화계 내부에서는 작품의 내용이나 역사 해석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더라도, 이를 표현한 연기자 개인에게 물리적·심리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적 소통의 범주를 벗어난 과도한 진영 논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창작물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토론은 영화 산업과 사회 발전의 필수적 요소다. 그러나 이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사적 공간을 침해하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방식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지금,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이성적인 담론을 회복하기 위한 언론과 문화계, 관객 모두의 성숙한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