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조직 신설·지분투자·M&A 모색…주택 침체 속 AI·로봇 사업 구조 재편
단순 협약 넘어 현장 실증 필요…지속적 투자 이어갈 ‘자금 여력’이 승부처
[미디어펜=서동영 기자]대형 건설사들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로봇 분야에서 기술과 인력을 직접 확보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전담조직을 만들고 설계 계열사를 합치는가 하면, 로봇 기업 지분을 사들이고 전력·냉각 전문기업과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주택 경기 침체가 길어지자 공사 물량을 따내는 데서 나아가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 건설사들이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등 미래 성장 분야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사진=SK에코플랜트

지난 2일 이강석 대우건설 대표는 취임식에서 AI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로보틱스를 미래 성장 분야로 꼽았다. 필요하면 전략적 인수합병(M&A)과 투자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체 육성만으로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발언으로 풀이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M&A는 일단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구체적인 인수 대상을 염두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전체적인 취지는 성장을 위한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 등을 과감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직부터 바꿨다…설계 역량 내재화

AI 데이터센터와 로보틱스 등에 대한 투자는 비단 대우건설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주요 건설사들은 올해 들어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AI와 데이터센터, 로봇 분야 기술 확보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특히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빠르게 늘어난 데다, 정부가 지난 6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내놓으면서 경쟁에 속도가 붙었다. 계획대로라면 2029년까지 8.4GW, 2035년까지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가 새롭게 추가된다.

AI 데이터센터는 건물보다 전력·냉각·배관을 하나로 묶는 기계·전기·배관(MEP) 설계가 성패를 가른다. 건설사들이 수주 영업에 앞서 조직과 설계 인력부터 손보는 이유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8월 'AI 데이터센터사업단'을 신설해 흩어져 있던 사업·기술·설계·조달·시공 기능을 한데 모았다. 같은 달 27일에는 100% 자회사 SK에코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한다고 발표했다. 설계와 시공을 한 회사 안에 두겠다는 취지다.

대우건설도 지난 4월 '데이터센터 TFT'를 꾸려 설계·시공·MEP 전문인력 양성에 들어갔다. 7월에는 데이터센터 운영기업 케이아이엔엑스(KINX)와 개발·시공·운영을 잇는 협력 모델을 만들기로 했다.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전력·냉각 기술은 외부와 손잡아 채우고 있다. GS건설은 지난 8월 LS일렉트릭과 AI 데이터센터 공동 대응 협약을 맺고 차세대 직류(DC) 배전기술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국내 기업 데이터빈과 서버를 특수 용액에 담가 식히는 액침냉각 시스템을 공동 개발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액침냉각 기업 GRC에 투자하고 사업협력 계약도 맺었다. 삼성물산은 2020년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데이터센터 전담팀을 꾸린 곳이다.

   
▲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이 공동 개발한 건설로봇./사진=삼성물산

◆로봇은 지분투자까지…AI는 전담조직으로

로봇 분야에서는 협약을 넘어 지분을 사들이는 사례가 나왔다. GS건설은 지난 6월 대동로보틱스와 건설현장 로봇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맺었고, 한 달 만인 7월에는 대동봉로보틱스의 시리즈A 투자에 참여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를 통해 포스코기술투자 등과 함께 총 50억 원 규모 지분을 공동 인수했다. 대동로보틱스는 흙바닥과 경사지를 달리며 최대 300kg을 나르는 야외 자율주행 로봇을 갖고 있다. 로봇 기반이 약했던 GS건설이 이미 만들어진 기술을 현장에 바로 들여오려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경쟁사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손을 잡았다. 양사는 2023년 건설로봇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맺고 자재 운반 로봇을 함께 개발, 2025년 시연했다. 롯데건설은 스타트업에서 기술을 찾는다.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으로 AI 감리기록 관리, AI 실내측위 기반 결함 탐지, 이종 로봇 통합 관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3곳을 뽑아 현장 실증에 나선다.

AI는 내부 경쟁력을 강화하는 흐름이다. 현대건설은 AX플랫폼팀과 AI디자인랩을 운영하며, 전 직원의 70% 이상이 대화형 AI 업무지원시스템 'HAI' 등을 업무에 쓰고 있다. GS건설은 사내 AI 경진대회 'AX 레시피'를 열어 임직원이 업무용 AI 솔루션을 직접 만들게 하고 있다. 해당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플랜트 철골 상세도면 검토 솔루션은 검토 시간을 80% 이상 줄였다. 

◆관건은 현금과 실행력…건설업 침체 지속 부담 

다만 지금까지의 움직임은 전담조직 신설과 업무협약, 소수 지분투자가 대부분이다. 건설사 본체가 기술 기업을 통째로 인수한 사례는 드물다.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도 과제다. 건설 불황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건설사들이 투자나 기업 인수에 선뜻 나설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강석 대표가 취임사에서 매출채권 회수와 재무건전성 개선을 먼저 꼽고, 여기서 확보한 여력을 기술·인재·미래사업에 재투자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후발주자가 선행 업체와의 격차를 얼마나 빨리 좁히느냐도 과제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이미 로봇을 현장에 배치해 운용 경험을 쌓고 있다. 건설사들의 신사업 구상이 실제 투자와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로봇이나 AI가 건설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기술을 확보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건설사들이 신사업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투자와 현장 적용을 이어갈 수 있는지가 향후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