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BIFF 기자회견서 "역사적 진실도 논쟁 가능, 창작은 사실에 기반할 필요 없어"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중국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역사적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들도 그 자체가 진실일지를 두고 논쟁이 있을 수 있다"며 영화와 역사, 창작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올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은 7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경쟁 부문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암살자(들)'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장 감독은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들었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는 "역사적 진실과 창작의 관계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거나 짧은 시간 내에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면서도 "창작은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꼭 진실이거나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틀째인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경쟁부문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이 최근 영화 '암살자(들)' 논란과 관련해 자기의 소신을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이어 "역사적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들도 그 자체가 진실일지를 두고 논쟁이 있을 수 있다"며 "저는 어떻게 보면 이 점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개봉 이후 실제 역사와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 주연 배우들이 광고 모델로 참여한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불매 움직임과 배우 자택 앞 시위 등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이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예정됐던 영화의 야외 무대인사도 취소됐다.

장이머우 감독은 논란을 바라보는 데 있어 무엇보다 관객의 몫을 강조했다.

그는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며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이 느끼는 바는 다 다를 것이고 다른 관객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장이머우 감독 자신 역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다. 데뷔작 '붉은 수수밭'(1987)을 비롯해 '귀주 이야기'(1992), '인생'(1994), '책상 서랍 속의 동화'(1999) 등을 통해 중국의 근현대사와 사회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아왔다.

특히 '붉은 수수밭'에서는 중일전쟁을, '5일의 마중'에서는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삼는 등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을 결합해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실제 사건을 영화로 옮겨본 정주리 감독도 '암살자(들)'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정 감독은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한 '다음 소희'(2023)를 연출했다.

정주리 감독은 "저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고 관객들을 만났다"며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 때문에 상처받는 분들이 계시고 그 상처가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창작자가 작품에 대해 져야 할 책임 역시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영화가 어디에서 시작됐든 간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모든 책임을 다 진다"며 "당연히 비판도 듣고 공감도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틀째인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경쟁부문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왼쪽부터), 비간 감독, 정주리 감독,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이시카와 케이 감독, 쩐 티 빅 응옥 감독, 배우 최희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어 "제 영화도 아닌데 너무나 위축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영화 작업을 계속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고 덧붙였다.

최근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 배우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번진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편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작품 13편이 초청됐다. 한국에서는 임하연 감독의 '그날의 태주', 김정훈 감독의 '면도' 등이 경쟁한다.

경쟁 부문의 대상 격인 부산 어워드 수상작은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출품할 수 있다.

지난해 '광야시대'로 부산국제영화제 예술공헌상을 받은 뒤 올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비간 감독은 경쟁 부문의 의미에 대해 "1, 2등을 가려 뽑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이 영화에 관해 논의하고 그 작품을 담론 속에 끌어들이게 되는 게 경쟁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심사 기준에 대해서는 "제 경험을 넘어서는, 도전이 되는 영화에 주목할 예정"이라며 "가로막혀 있는 부분을 돌파하고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으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과 정서를 연결해주는 작품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 최희서는 좋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희서는 "'가능한 사랑'을 보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너무나 소중했다. 제 아버지와 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질문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덧붙였다.

올해 경쟁 부문 심사에는 장이머우 감독과 비간 감독, 정주리 감독, 최희서를 비롯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카자흐스탄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일본 이시카와 케이 감독, 베트남 쩐 티 빅 응옥 프로듀서 등이 참여한다.

올해 경쟁 부문 수상 결과는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리는 15일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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