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FF, "독립적 프로그래밍으로 선정…창작적 비전 존중" 발표
국힘 의원 109명 철회 서한 전달했으나 "창작의 영역" 거절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국내에서 급격한 역사 왜곡 논란과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정치권의 공식적인 상영 철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37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SGIFF) 개막작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는 7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이어지는 일련의 논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제작진의 창작적 비전을 깊이 존중하며, 본 작품은 변함없이 올해 영화제의 포문을 열 개막작으로 예정대로 상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제 측은 이번 결정의 배경에 대해 "예술적 성취와 동시대 아시아 영화에 대한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영화제 자체의 독립적인 프로그래밍 절차를 거쳐 선정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작진은 본 작품이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에 허구의 인물과 드라마틱한 상황을 결합한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물임을 밝혀왔다"라며 "특정 정치적 목적을 띠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단정짓기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 싱가포르 영화제 측이 국민의힘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정대로 '암살자(들)'을 개막작으로 상영한다고 밝혔다./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앞서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9명은 제레미 추아 SGIFF 집행위원장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 철회를 촉구한 바 있다. 여당 측은 영화가 1974년 8·15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에 당시 중앙정보부나 박정희 정권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어 왜곡된 역사관을 유포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영화제 측이 이를 공식 거절하면서 사태는 국제적인 창작의 자유 논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모티프로 사건의 숨겨진 배후를 추적하는 기자와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암살자(들)'은 지난달 토론토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로 세계 무대에 첫선을 보인 뒤 지난달 23일 국내에 개봉했다. 개봉 직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50만 명 이상의 누적 관객을 동원하고 추석 연휴 기간 47%에 달하는 높은 좌석 판매율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켰으나, 영화 외적인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보수 성향 단체들의 항의 시위가 격화하면서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사옥 및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인근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됐고, 배우가 모델로 활동 중인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 구호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유해진을 향한 온라인상 협박성 발언이 잇따르자 경찰은 배우 신변 보호에 착수해 긴급 신고용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자택 인근 순찰을 강화하는 사상 초유의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배우들은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야외 무대인사 등 주요 홍보 행사에 불참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계 및 정치권 전반으로 파장이 퍼지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상상력과 창작의 영역에는 어떠한 제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창작자와 출연진을 향한 비이성적인 위협과 위해 행위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과 협력해 적극 대응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1987년 창설되어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제37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오는 10월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리며, '암살자(들)'은 21일 개막식 무대에서 글로벌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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