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호남·용인 동시 착공’ 승부수… 1000조원 청사진 뒤엔 '현실적 딜레마'
입력 2026-10-12 11:14:27 | 수정 2026-10-12 11:18:23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지자체장 철회설 발언 열흘 만에 현장행… ‘1000조원 분산 투자’ 현실성 우려
인재 남방한계선·전력·용수 3대 장벽 여전… “정부·지자체 인프라 뒷받침 관건”
인재 남방한계선·전력·용수 3대 장벽 여전… “정부·지자체 인프라 뒷받침 관건”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철회설을 직접 진화하며 ‘용인과 호남 팹의 동시 건설’을 강조했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증에 맞춘 선제적 설비 확충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하다.
대기업 총수가 지자체장의 발언에서 촉발된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아 수백조 원대 추가 구상을 내놓은 과정도 이례적이지만, 업계 내에선 기업의 실행 의지와 별개로 호남 팹이 마주한 물리적·구조적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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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9일 광주 탄약고 부지를 방문해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오른쪽)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SK 제공 | ||
◆ 지자체장 발언 열흘 만에 현장행… 대외 리스크가 앞당긴 타임라인
12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사안의 발단은 사업 주체인 기업 내부가 아닌 외부 정치권에서 불거졌다. 민형배 전남광주시장이 지난달 30일 포럼 석상에서 “SK 측이 발을 뺄 수 있는지, 속도를 늦출 수 있는지 논의됐던 것으로 들었다”며 투자 철회 가능성을 공개 언급하면서다.
해당 발언은 지역 여론을 중심으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대목은 이에 대응한 SK그룹의 움직임이다. 통상적인 해명 자료 배포나 실무선 조율을 넘어, 최태원 회장이 불과 9일 만에 광주 군공항 부지를 직접 방문했다.
현장에서 최 회장은 400조 원 투자의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600조 원 규모로 추진 중인 경기 용인 클러스터와의 ‘동시 병행 건설’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나아가 “부지와 수요 여건에 따라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며 상향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일반적으로 수백조 원이 투입되는 반도체 설비 투자는 공정 수율, 고객사 납기, 현금흐름을 면밀히 대조해 장기 계획 아래 단계적으로 승인된다.
그러나 이번 건은 외부 지자체의 의혹 제기로 증폭된 대외적 논란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현장에 나서 로드맵을 훌쩍 뛰어넘는 청사진을 내놓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 ‘남방한계선’과 생태계 단절… 기업 의지만으로 못 푸는 3대 장벽
문제는 기업이 RE100 대응이나 분산 에너지 차원에서 진정성 있는 의지를 갖고 호남행을 검토하더라도, 반도체 제조의 특성상 수반되는 현실적 난제들이 기업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인재 유치’다. 반도체는 미세공정과 수율을 안정화할 석·박사급 R&D 및 숙련 공정 엔지니어의 역량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우수 인력의 거주 선호도가 수도권 남부에 머무는 ‘남방한계선’이 뚜렷하다. 이미 충북 청주 사업장마저 인력 유치에 상당한 노력을 쏟는 상황에서, 호남권 거점에 대규모 핵심 인력을 유치하고 정주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과제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클러스터와의 집적 효과 단절’도 크다. 기흥-화성-평택-이천-용인으로 이어지는 벨트는 장비 오류나 화학물질 공급 이슈 발생 시 협력사 인력이 30분 내외로 투입되는 촘촘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호남에 팹을 구축할 경우 중소 협력사들까지 생산 및 기술 지원 거점을 이원화해야 하는데, 이는 생태계 전반의 물류·대응 비용 증가로 직결된다.
여기에 하루 수십만 톤 단위의 공업용수 조달 체계와, 전압 강하가 단 1초도 용납되지 않는 초고품질의 전력망 계통 연결 문제 역시 계획 수립부터 완공까지 수년 이상의 시간과 조 단위 예산이 드는 물리적 장벽이다.
◆ 1000조 원 투자 분산… 공은 지자체·정부 ‘실질적 인프라’로
뿐만 아니라 용인 600조 원과 호남 400조 원 등 단순 합산으로만 1000조 원에 달하는 설비투자를 동시 병행 형태로 집행할 경우, 인프라 중복 구축에 따른 자본 지출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SK하이닉스가 견조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설비와 자원의 분산 투자는 자본 회수 기간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최 회장의 광주 방문으로 정무적 마찰은 피했지만, 청사진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을 향해 투자 약속을 촉구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안게 될 인재·용수·전력·소부장 리스크를 덜어줄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인프라 구축 속도로 타당성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전략적 결단이든 대외적 고려든 수백조 원의 투자 청사진을 제시한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할 국가 단위의 전력망·용수 관로·세제 지원이 제때 이행되지 못하면 심각한 자본 비효율에 직면할 수 있다”며 “지자체와 정치권이 기업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약속한 인프라 실행력을 조기에 입증해 보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