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빅딜로 1999년 10월 13일 법인 소멸… '승자의 저주' 부른 정책 실패
청주 팹은 SK하이닉스 뼈대로, LG는 배터리·전장으로 체질 전환 '전화위복'
[미디어펜=조우현 기자]1999년 10월 13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한 축을 지탱하던 LG반도체가 현대전자와의 흡수합병 절차를 마무리하고 공식적으로 법인 해산 등기를 마쳤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5대 그룹 빅딜'이라는 조정 속에 사업을 접은 지 꼭 27년이 흐른 시점이다.

당시 고 구본무 LG 선대회장은 사재를 털어 지키려 했던 반도체 사업을 강제로 넘겨야 했던 회한 속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행사에 발길을 끊었다. 그만큼 그룹사 차원의 충격은 깊었고, 시장 안팎에서도 관치에 의한 통폐합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 1999년 1월 반도체 빅딜에 반대하는 LG반도체 청주 및 구미공장 직원 7000여 명이 서울 여의도에서 'LG반도체 사수 및 생존권 확보'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27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역사는 이 비운을 다른 시선으로 복기하고 있다. 정권의 인위적 개입은 뼈아픈 정책 실패로 귀결됐지만, 통합 법인은 오늘날 글로벌 메모리 강자인 SK하이닉스로 안착했기 때문이다. 

LG 역시 배터리와 전장 중심으로 성공적인 체질 전환을 이뤄냈다. 1999년의 강제 합병이 결과적으로 한국 첨단 산업 지형도를 다시 짜는 변곡점이 된 셈이다.

◆ 시장 논리 배제된 관치 빅딜… '승자의 저주'와 혹독한 대가

13일 재계에 따르면 1998년 말 시작된 반도체 빅딜은 '과잉·중복 투자 해소'와 '기업 부채비율 200% 달성'이라는 명분 아래 추진됐다. 당시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D램 시장을 삼분하던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강제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이루겠다는 논리였다.

정부의 압박 속에 컨설팅 업체의 단일화 평가를 거쳐 통합 주체로 현대전자가 낙점됐고, LG는 1조5600억 원의 매각 대금을 받고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시장 원리를 거스른 교통정리는 참혹한 결과를 불렀다. 막대한 인수 자금을 차입으로 조달하고 부실을 떠안은 현대전자는 통합 시너지를 내기도 전에 곧바로 '승자의 저주'에 직면했다.

곧이어 닥친 2001년 IT 버블 붕괴와 글로벌 반도체 불황은 치명타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유동성 위기를 버티지 못한 현대전자는 결국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뒤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무리한 빅딜이 기업의 자율적 경영 판단을 인위적 정책으로 대체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증명한 대표적 정책 실패 사례로 남은 셈이다.

◆ 하이닉스 뼈대 된 'LG DNA'… 청주 팹과 미세공정 유산

비록 LG반도체의 법인은 사라졌지만, 핵심 연구 인력과 기술 자산은 고스란히 통합 법인으로 이어졌다. 워크아웃을 거쳐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로 출범한 이후, 2012년 SK그룹에 인수되며 본격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당시 LG가 다져놓은 자산은 지금도 SK하이닉스의 한 축을 든든히 지탱하고 있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옛 LG반도체 공장은 현재 SK하이닉스의 핵심 낸드플래시 생산기지이자 차세대 패키징 거점으로 가동 중이다.

기술적 유산 역시 결정적이었다. 당시 세계 최초로 50나노급 커패시터를 개발하는 등 미세공정과 공정 수율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LG반도체의 엔지니어링 실력은 합병 이후 하이닉스의 제조 체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주춧돌이 됐다.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의 성장 이면에는 두 기업의 치열했던 기술력이 결합된 토양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반도체 잃고 일군 '배터리'…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결단

LG 입장에선 반도체 사업을 내어준 과정이 억울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를 넘기며 확보한 매각 자금과 집념이 차세대 신사업으로 고스란히 옮겨간 덕분이다.

사실 LG의 2차전지 연구는 빅딜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다만 천문학적인 현금이 쓰이는 반도체가 사라지면서 배터리와 부품 사업이 그룹 내 핵심 투자처로 부상할 수 있었다. 구본무 선대회장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막대한 적자가 누적되고 내부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음에도 2차전지 연구에 사활을 걸었다.

구본무 회장의 뚝심은 결국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핵심 파트너이자 한국 배터리의 대표 주자인 LG에너지솔루션을 탄생시킨 모태가 됐다. 반도체의 공백 덕분에 그룹의 역량을 배터리와 첨단 소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자동차 전장(VS) 등 고부가가치 B2B 사업으로 기민하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린 셈이다.

◆ 관치 한계 넘은 기업 자구력… '시장에 맡겨라' 교훈

1999년 10월 13일 단행된 강제 합병은 당시 한국 경제에 상당한 진통을 남겼다. 정부가 내건 명분 뒤로 정치적 역학 관계가 개입되면서 무리한 결정을 내렸고, 이는 '승자의 저주'와 대규모 부실이라는 정책 실패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관치의 성과가 아닌, 기업들의 끈질긴 기술 축적과 자구적 경영 판단 덕분이었다. 결국 사업 재편은 정치가 아닌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는 "27년 전 LG반도체 빅딜은 여전히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며 "정부의 역할은 인위적 통폐합의 주도자가 아니라, 기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뛰놀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를 뒷받침하는 관찰자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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