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상환용 매각 뒤 또 증여…삼성 옥죄는 ‘세금 뫼비우스’
입력 2026-10-14 13:58:51 | 수정 2026-10-14 15:30:29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빚 갚으려 팔고 넘겨받아 또 세금… 증여세 1.5조원 육박
상속세·대출·증여세 반복… 생산 자본 묶는 세제 악순환
상속세·대출·증여세 반복… 생산 자본 묶는 세제 악순환
[미디어펜=조우현 기자]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2조6000억 원 규모의 삼성전자 보통주 1115만8000주를 추가 증여하기로 했다. 이번 지분 이전으로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58%에서 1.75%로 0.17%포인트 소폭 상승한다. 그러나 미미한 수준의 지분율 확대를 위해 이 회장이 부담해야 할 증여세는 1조5000억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앞서 홍 전 관장은 지난 9월 상속세 납부용 금융권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 1조9000억 원어치를 이 회장에게 매도했다. 대출 상환을 위한 지분 매각이 이뤄진 지 한 달 만에 대규모 지분 증여와 막대한 세금 부담이 다시 이어지면서, 조 단위 세금 납부와 채무 상환이 맞물린 삼성 총수 일가의 자금 운용 구조가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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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지난해 11월 2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사관후보생 임관식’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 ||
◆ 대출금 갚기 위한 매각 뒤 또다시 조 단위 과세
이번 거래의 배경에는 2020년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지속된 막대한 상속세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유족들에게 부과된 상속세 총액은 12조 원대에 달했다. 상속세를 일시에 납부할 현금이 부족했던 유족들은 5년간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 제도를 이용하면서 주식담보대출을 대거 실행했다.
그러나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대출 이자와 만기 도래에 따른 원금 상환 압박이 누적되자, 홍 전 관장은 2021년 상속받은 삼성전자 주식을 여러 차례 시장에 매각해야 했다. 지난 9월 이 회장에게 718만여 주를 장외 매도한 거래 역시 상속세 완납을 위해 조달했던 1조 원 규모 주식담보대출을 상환하기 위한 조치였다.
문제는 대출금 상환을 마친 뒤 남은 지분을 경영권 보강 목적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다시 조 단위의 증여세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번 증여로 홍 전 관장의 개인 채무는 정리 수순에 들어갔으나, 주식을 넘겨받은 이 회장은 새로 산정될 1조5000억 원대의 증여세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결과적으로 이 회장 역시 세금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 대출을 일으키거나 배당금 의존도를 높여야 하는 연쇄적인 부담을 안게 된다.
◆ 실질 최고세율 60%… 경영권 유지 비용에 자본 묶여
재계에서는 이처럼 자금이 반복적으로 세금 납부에 묶이는 원인으로 한국의 과도한 상속·증여세율을 지목한다.
현재 한국의 상속·증여세 법정 최고세율은 50%이지만, 대기업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 적용되는 20% 할증 평가를 더하면 실효세율은 60%에 이른다. 생전에 최고 49.5%(지방소득세 포함)의 소득세를 납부하고 형성한 자산이더라도 상속·증여 단계에서 다시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체계다.
이러한 고율 과세 환경에서는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2% 미만에 머무르는 구조적 취약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0.17%포인트 수준의 지분을 확보해 최소한의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데만 조 단위의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세금 납부를 위해 대규모 주식을 매각하거나 주식담보대출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분 변동과 오버행 우려는 일반 주주와 시장 전체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 기업 투자 역량 훼손 막을 세제 개편 필요성 제기
글로벌 경쟁 환경과 비교하면 국내 기업의 세무 부담은 더욱 두드러진다. 주요 선진국들은 가업 승계 시 세 부담을 낮춰 기업 자본이 생산적 투자에 머물도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은 고용 유지를 전제로 최대 100% 상속세를 감면하며, 캐나다와 호주 등은 주식을 물려받을 때가 아니라 추후 매각해 현금화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세를 채택해 경영의 영속성을 보장한다.
세금 자체는 오너 일가 개인의 자산으로 납부하지만, 1~2%대에 불과한 극히 취약한 지분율 탓에 경영권 방어에 막대한 사재가 묶이면서 과감한 장기 투자 결단이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최고경영진이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기술 혁신에 전념해야 할 시점에 지배력 유지와 채무 관리 등 비생산적인 영역에 막대한 시간과 경영 역량을 분산해야 하는 현실 역시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보이지 않는 손실로 지목된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차세대 반도체와 AI 설비에 막대한 현금을 투입하는 시기에 국내 대표 기업은 상속세 납부와 대출 상환, 그리고 지분 이전에 따른 재과세 부담에 대규모 자본을 묶어두고 있다"며 "기업의 투자 역량을 과도하게 소모시키는 현행 상속·증여세 체계에 대해 실질적인 제도 개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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