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SK온, 열폭주 차단부터 사전 감지까지 안전기술 경쟁
20년 보증 확대…배터리 수명 넘어 '운영 신뢰성'이 새 기준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ESS 중요성↑…자율진단·예측기술 부상
배터리 기업들이 최근 반도체 붐을 타고 실적 반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기차 시대 이후 각광받았던 배터리 기업들은 캐즘(수요정체) 현상으로 고심하고 있었지만, 최근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며 순풍을 탄 모양새다. 하지만 배터리의 고질적 문제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 '신뢰와 안전'이 배터리 기업의 보증수표로 꼽힌다. 미디어펜은 이번 기획을 통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20년 동안 고객사에게 어떻게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단해보는 시간을 갖는다./편집자주

[미디어펜=김하늘 기자]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의 보증기간이 최대 20년까지 늘어나면서 배터리업계의 경쟁도 '얼마나 오래 쓰느냐'에서 '오랜 기간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하느냐'로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에너지 밀도와 가격, 수명 연장이 주요 경쟁 요소였다면 이제는 장기간 운전 과정에서 배터리 상태를 지속적으로 진단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열폭주가 발생하기 전 이상을 감지하는 기술부터 사고 발생 이후 주변 셀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는 기술, 배터리관리시스템(BMS)·냉각·소화 등 시스템 전반의 유지관리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 사진=삼성SDI


◆ 삼성은 열폭주 차단·LG는 전이 억제…SK온은 '사전 감지'

국내 배터리 3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ESS 안전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는 일체형 ESS 배터리 솔루션 'SBB 1.5'에 자체 개발한 EDI(Enhanced Direct Injection·모듈 내장형 직분사) 기술을 적용했다.

EDI는 이상 셀에서 열폭주가 발생할 경우 소화 약재를 모듈 내부에 직접 분사해 주변 셀과 모듈로 열이 확산되는 것을 억제하는 기술이다.

삼성SDI에 따르면 SBB 1.5의 보증기간은 최대 20년이다. 전기를 저장했다 다시 내보낼 때의 효율을 의미하는 왕복효율(RTE)은 95% 이상, 연간 정상 가동이 가능한 비율은 97% 이상을 보장한다. 다만 가동률과 세부 보증 조건은 프로젝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장기 수명과 안전성 역시 다양한 외부 환경 등을 고려해 내부 검증을 거쳐 보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FP 기반 ESS에서 열폭주 발생 시 화재가 인접 모듈로 전이되는 것을 억제하는 구조에 무게를 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LFP 제품은 별도의 소화재 분사·주수 시스템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화재 전이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셀과 모듈, 팩, 시스템 단위로 안전성 시험을 진행하고 수명과 안전성은 퇴화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검증한다는 설명이다.

또 자사 LFP 제품이 국내 제품 가운데 처음으로 UL 9540A와 대형 화재 모의시험을 통과했으며, 전기저장시설 화재안전기준(NFPC 607) 관련 시험에서도 열폭주 조건에서 인접 모듈로 화재가 전이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SK온은 화재 발생 이후 확산을 막는 것에 더해 배터리 내부의 이상 징후를 조기에 파악하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SK온은 ESS에 전기화학 임피던스 분광법(Electrochemical Impedance Spectroscopy·EIS)을 적용했다. EIS는 배터리에 미세한 전기 신호를 보내 내부 저항과 전기화학적 반응 특성의 변화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배터리 내부 상태가 변하면 급격한 온도 상승에 앞서 임피던스 값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기존의 온도 중심 감지보다 앞서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국내 배터리 3사의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방향은 비슷하다. 이상 징후를 가능한 한 일찍 찾아내고, 열폭주가 발생할 경우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며, 장기간 시스템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ESS는 장기간 운영되는 설비인 만큼 배터리 제품 자체의 안전성뿐 아니라 운영·관리 과정에서의 안전성 확보도 중요하다"며 "이에 배터리 업계에서도 제품 설계부터 운영·관리까지 전 과정에 걸쳐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래가는 배터리' 넘어 '운영 신뢰성' 경쟁으로

장기 보증이 확대되면서 ESS 경쟁의 기준도 제품 자체의 수명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으로 넓어지고 있다.

배터리는 운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출하 당시 성능만으로 10년, 20년 뒤의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에 배터리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이상 징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진단 기술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확산 등으로 대규모 전력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ESS 시장에서도 '시스템 안정성'과 '운영 신뢰성'이 주요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센터처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한 시설에서는 ESS가 단순한 전력 저장장치를 넘어 전력 품질과 공급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설비로 활용된다. 이에 열 확산을 막는 물리적 안전기술뿐 아니라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미세한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하는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중요해지는 모습이다.

장기 보증 경쟁 역시 이 같은 기술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이 더 오랜 기간 배터리 성능과 운영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는 만큼 초기 제품 성능뿐 아니라 운용 단계에서의 관리 능력도 함께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확산 등으로 대규모 전력 인프라 수요가 늘면서 글로벌 ESS 시장도 시스템 안정성과 운영 신뢰성을 더욱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열 확산 방지와 같은 물리적 안전 기술뿐 아니라 AI 기반의 미세 이상 징후 사전 탐지와 자율 진단 소프트웨어 역량이 향후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디어펜=김하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