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화재 사고 세상 떠난 허 감독 마지막 예술적 유산
안시영화제 초청·부천영화제 특별언급 등 작푸 평가 높아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서 생존한 돼지와 잔혹한 내무반 폭력을 피해 탈영한 군인. 인간이 되고 싶은 돼지와 짐승이 되고 싶었던 군인의 잔혹하고 비극적인 우화를 다룬 독립 애니메이션이 관객들을 찾아온다. 

지난 7월 불의의 화재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허범욱 감독의 유작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가 오늘(21일) 전국 극장에서 전격 개봉한다.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영화계와 독립영화 배급사에 따르면 독창적인 시선으로 독립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며 국내외 평단으로부터 독보적인 창작자로 주목받았던 허범욱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이 작품은 구제역 파동에 따른 끔찍한 살처분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돼지 'H'와 군대 내 가혹행위와 무자비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탈영을 감행한 최정석 일병의 잔혹하고 절박한 이야기를 교차하여 그려낸 심리 장르 애니메이션이다.

   
▲ 고 허범욱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가 마침내 오늘(21일) 개봉한다.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작품은 돼지 H와 군인 정석의 서사를 교차 상영하며 묘한 긴장감과 깊은 몰입감을 자아낸다. H는 구제역으로 수많은 돼지들이 산 채로 매립당하는 끔찍한 살처분 현장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아 산속 동굴로 숨어들고, 정석은 선임들의 무자비한 구타와 가혹행위에 발버둥 치다 결국 군대를 빠져나와 같은 산속 동굴로 향한다.

서로 다른 존재인 인간이 되고 싶었던 돼지 H와 짐승이 되고 싶었던 인간 정석은 캄캄한 동굴 속에서 우연히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이후 두 존재에게 기이하고 신비로운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게 되고, H와 정석은 각자 살벌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분투에 나선다.

영화는 돼지 H와 인간 정석의 평행선 같은 서사를 통해 현대 사회의 잔혹한 시스템과 그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폭력성을 묵직하게 조명한다. 정석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이 되고 싶어 했던 배경에는 군대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주변의 끊임없는 학대와 괴롭힘이 존재했다. 반면 H가 짐승의 굴레를 벗어나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배경에는 오직 인간의 상업적 이익만을 위해 좁고 비위생적인 공장식 축사에 가둬두고 사육하는 열악하고 잔인한 사육 환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와 거침없는 시각적 묘사로 현대 사회의 냉혹한 단면을 정면으로 직시한 이 작품은 일찍이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세계 최고 권위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축제인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공식 초청을 필두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최우수작품상을 석권하며 뛰어난 예술성과 독창성을 입증한 바 있다.

작품을 연출한 고 허범욱 감독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등을 거치며 독창적인 연출 세계를 구축해 온 베테랑 창작자다. 지난 2015년 장편 애니메이션 '창백한 얼굴들'로 데뷔하며 영화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이 담긴 두 번째 장편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의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던 지난 7월, 예기치 않은 불의의 화재 사고로 43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독립영화계와 영화 팬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다.

세상의 냉혹함과 시스템의 폭력을 과감하게 스크린에 옮겨 담은 고 허범욱 감독의 안타까운 유작이자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에 영화계의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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