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미국산 원유 운송에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용선
수입선 다변화에 현물거래 확대 가능성…중형선 활용 주목
[미디어펜=김하늘 기자] 중동 지역의 원유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원유 운송 전략에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중남미 등으로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중심의 대량 운송에 더해 중형 유조선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SK에너지는 최근 미국산 원유 운송을 위해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사모스(Samos)'를 용선했다고 21일 밝혔다. 해당 선박의 용선료는 약 23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용선은 중동발 원유 공급 불확실성과 국제 유조선 운임 상승이 맞물린 가운데 이뤄졌다. 통상 VLCC는 대규모 원유를 운송할 때 배럴당 운송비를 낮출 수 있지만, 최근처럼 운임이 급등한 상황에선 중형 유조선이 경제적으로 유리할 가능성도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원유를 구매할 때는 운임뿐 아니라 원유 가격과 프리미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제성을 판단한다"며 "VLCC가 일반적으로 운송비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현재 운임 수준에선 중형선 활용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SK에너지는 운임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원유 도입 지역과 선박 운용 방식, 장기 용선 비중 등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기존에 확보한 선박과 용선 계약 등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단기간에 운송 체계를 전면적으로 변경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 수입선 다변화에 현물시장 중요성 확대…중형선이 대안

국내 정유사들은 그동안 중동산 원유를 장기 계약으로 대량 도입하면서 VLCC를 주로 활용해 왔다. VLCC는 약 200만 배럴의 원유를 한 번에 운송할 수 있어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경우 운송비를 절감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공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과 중남미 등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확보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공급처에서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는 과정에선 장기 계약뿐 아니라 현물시장 거래도 활용할 수 있다.

현물시장은 장기 공급계약과 달리 개별 거래를 통해 특정 물량의 원유를 구매하는 시장으로, 비교적 가까운 시점에 인도받을 원유를 거래한다. 거래 시점과 공급 여건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달라지는 만큼, 필요한 시기에 VLCC 한 척을 채울 원유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때 원유를 추가로 확보할 때까지 대형 선박을 대기시키는 것보다 이미 확보한 물량을 중형 유조선으로 먼저 운송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중동 원유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정유사들이 수입선을 다변화하려면 현물시장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은 현물시장이 발달했지만 구매 수요도 많아 VLCC 한 척을 채울 물량을 한 번에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아프라막스(Aframax)나 수에즈막스(Suezmax)급 유조선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아프라막스는 약 50만~80만 배럴, 수에즈막스는 약 100만 배럴을 운송할 수 있어 원유 확보 물량과 운송 조건에 맞춰 선박을 선택할 수 있다.

◆ 아시아 정유사들 중형선 활용…운임·항로 따라 선택 달라져

아시아 정유사들 사이에서도 중형 유조선을 활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대만 국영 정유사 CPC는 최근 일주일 동안 아프라막스급 원유 화물 6건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유사들 역시 기존부터 원유 도입 지역과 확보 물량에 따라 중형 유조선을 활용해 왔다. 최근엔 VLCC 운임 상승과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 등으로 선박 운용에 고려해야 할 변수도 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선 상대적으로 작은 선박으로 원유를 실어 나른 뒤 오만만에 대기 중인 대형 유조선으로 옮겨 싣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또 VLCC는 원유를 가득 실으면 흘수 제한으로 수에즈운하 통과가 어려워 일부 항로에선 중형선이 운용상 이점을 가질 수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최근 VLCC 운임이 크게 오른 데다 호르무즈 해협에선 중형선으로 원유를 실어 나른 뒤 오만만에서 대형 유조선으로 옮겨 싣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며 "수에즈운하 통과 여부 등 항로 조건도 선박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프리카나 북중미, 남미 등에선 한 번에 VLCC를 채울 만큼의 원유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기존에도 아프라막스나 수에즈막스급 선박을 활용해 왔다"며 "원유 도입 지역과 확보 물량, 운송 여건에 따라 적합한 선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중동 불안 장기화에 운송 전략도 변화 가능성…정유업계 대응 모색

중동 지역의 원유 공급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국내 정유사들의 선박 운용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기존 중동산 원유의 대량 운송 체계는 유지하되 새로운 공급처에서 확보한 원유의 물량과 운송 경로에 맞춰 선박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원유 수송로의 변화도 변수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이 이어지면 중동 산유국들이 송유관이나 대체 항로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선적 장소와 운송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도 운하 통과 가능 여부와 항만 수심, 선적·하역 조건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원유 도입 지역과 운송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중형 유조선의 활용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중형선은 상대적으로 적은 물량을 운송하는 데 적합하고, 대형선의 통항이 제한되는 일부 항로에서도 운용상 이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GS칼텍스도 향후 원유 수입선 다변화에 대비해 다양한 운송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에는 배럴당 운송비가 저렴한 VLCC를 주로 활용해 왔지만, 원유 확보 지역과 물량, 운임 등에 따라 중형선 활용을 포함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VLCC가 운송비 측면에서 유리해 많이 활용해 왔지만, 원유 수입선이 다변화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며 "급변하는 시장에서 특정 선박만 고집하기보다는 원유 도입 지역과 물량, 운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운송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중형 유조선이 모든 상황에서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대규모 원유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거나 VLCC 운임이 하락하면 초대형선의 배럴당 운송비 경쟁력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 결국 정유사들은 원유 도입 지역과 확보 물량, 운송 시점 등을 고려해 선박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기존에 대규모 원유를 정기적으로 도입하는 항로에선 VLCC를 주로 활용하지만, 새로운 공급처에서 현물로 원유를 확보할 땐 VLCC 한 척을 채울 물량을 제때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원유를 추가로 확보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단 이미 확보한 물량을 신속하게 운송해 유가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동 원유 수급의 불확실성으로 수입선 다변화가 불가피해지면서 현물시장을 활용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확보한 물량에 맞춰 원유를 운송할 수 있는 중형 유조선의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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