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발 묶였던 기간 멈춰선 것은 실적 아닌 ‘10년 뒤 먹거리’
사이클 반등 넘어 미래 바꿀 ‘오너십 감한 베팅’ 본격화할 때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오는 27일로 공식 취임 만 4년을 맞는다. 2022년 가을 별도의 취임식 없이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하겠다”며 책임을 맡은 이후, 삼성은 오랜 사법 리스크와 반도체 한파, 고대역폭메모리(HBM) 실기론이 겹친 시험대를 지나왔다. 

최근 AI 메모리를 중심으로 실적 반등을 이뤄내며 한숨을 돌린 상태지만 재계의 시선은 이번 실적 이면에 놓인 본질을 향하고 있다. “총수가 없어도 시스템으로 굴러간다”는 세간의 통념 뒤에 가려진 기업가 정신과 오너십의 역할을 다시금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 10월 21일(현지 시각 기준) 아랍에미리트(UAE)에 있는 알 다프라(Al Dhafra) 가스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현지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임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시차의 착시, 실적은 시스템이 내고, 결단은 총수가 한다

2017년 이 회장이 구속 수감됐을 당시 삼성전자가 53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자 일각에선 “총수가 없어도 회사는 더 잘 돌아간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는 장치 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착시라는 평가가 나왔다. 2017년의 기록적인 결실은, 인텔과 TSMC 등 글로벌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이며 몸을 사리던 2015년 평택 반도체 라인에 15조6000억 원을 던졌던 과감한 베팅이 2년 뒤 수확으로 돌아온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수의 발이 묶였던 기간 동안 삼성에서 멈춰선 것은 당장의 공장 가동이나 분기 실적이 아니었다. 2016년 9조 원 규모의 하만 인수를 끝으로 대형 인수합병(M&A)은 멈췄고,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10년 뒤를 내다보는 전략적 결정’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일상의 관리는 시스템과 전문경영인이 해낼 수 있어도, 회사 운명을 걸고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장기적 결단은 오너십의 부재 속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 ‘임기 3년’의 한계 vs ‘10년 적자’ 버티는 오너십

실제로 대한민국 산업사를 바꾼 결정적 도약의 순간마다 오너의 독자적 결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1974년 비서실과 부친의 반대에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이후 12년 연속 누적 적자 2000억 원을 버텨내며 1조2500억 원을 추가로 쏟아 부은 끝에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신화를 쓴 것이 대표적이다.

임기가 평균 3년 미만에 불과한 전문경영인은 단기 실적 압박과 문책 위험 탓에 10년이 넘는 적자를 감내하며 대규모 투자를 밀어붙이기 어렵다. 

2012년 내부 반대를 뚫고 하이닉스를 인수해 2023년 7조 원대 적자 속에서도 HBM 투자를 놓지 않았던 최태원 SK 회장의 승부수, 피터 슈라이어와 알버트 비어만을 영입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에 거액의 사재를 투입해 미래 모빌리티 판을 짠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행보 역시 오너십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결단이었다는 평가다.

지난 수년간 삼성이 겪었던 기술적 흔들림 역시, 역설적으로 오너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과감한 선제 투자와 파괴적 혁신을 결단하지 못한 채 단기 지표 관리에 매몰됐던 관리주의의 폐해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이제는 ‘수습’ 넘어… 다시 ‘총수의 베팅’ 필요한 때

삼성은 최근 반도체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등 현장 기술 중심의 체질 개선을 통해 HBM4와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기술력을 다잡으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메모리 사이클 회복에 따른 안도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재계의 일치된 시각이다. 이제 이재용 회장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회사를 관리하는 수동적 수장이 아닌, 선대 회장들이 그랬듯 ‘10년 뒤 삼성의 미래’를 결정짓는 과감한 결단자라는 의미에서다.

당장 TSMC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파운드리 부문의 차세대 GAA 공정 안착, 멈춰 서 있던 조 단위 대형 M&A를 통한 피지컬 AI·로봇·차세대 바이오 등 신수종 사업 발굴과 과감한 결단을 뒷받침할 책임경영과 컨트롤타워 재건은 총수의 고유 영역이다.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는 “단기 분기 실적은 잘 갖춰진 시스템으로도 굴러가지만, 판을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총수의 결단이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며 “복합 위기를 뚫고 기초 체력을 복원한 이재용 회장이 이제는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바꿀 진짜 ‘오너십의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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